유기령 2017. 9. 26. 10:07

원문


 『참이냐 거짓이냐』


 "무, 무슨 짓이야!"


 나는 그만 귓가 가까이 있던 군죠를 밀쳐낸다.


 "오오, 부끄러워 하는 거야? 여전히 재밌는 녀석이네. 얼굴까지 아주 새빨개졌는걸♡"


 군죠가 오른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히죽대며 나를 향해 웃는다. 

 예전부터 이 녀석은 나를 이런 식으로 놀려댔다.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처럼 굴고선 내가 동요하는 걸 보고 즐거워하곤 했다.


 "......그런 건 집어치우고 이야기나 계속 해."

 "이야기? 뭐였더라? (・ω<)데헷"

 "그뢰브너 기저 말이다!"


 (・ω<)데헷이라니 되도 않는 이모티콘 쓰지 마라.


 "아, 그랬지."
 "어, 그랬어."

 "...그뢰브너 기저를 쓰기 전에 하나 준비해야 되는 게 있어."

 "무슨 준비?"


 군죠는 내 말에 신경도 안 쓰고 숏팬츠 뒷주머니에서 A4 사이즈의 하얀 종이를 한 장 꺼낸다.

 아무래도 메모지인 모양이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찾는 듯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뒤진다.


 "으음, 으음, 그러니까, 그게 어디 있더라?"


 옷에 물건을 넣을 공간이라곤 있어 보이지도 않건만 손에 닿는 틈새란 틈새엔 죄다 손을 찔러 넣는다.

 솔직히 눈을 두기가 난감하다.


 "아, 찾았다!"


 군죠가 가슴골 사이에서 볼펜을 꺼낸다.

 어디다 넣고 다니는 거냐.


 "받아."
 "뭐, 뭐야."


 군죠는 가슴에서 꺼낸 펜을 내게 내민다.

 펜이 있던 곳이 있던 곳인지라 잠깐 심장이 쿵쿵거렸다.


 "이제부터 그 종이에 내가 말하는 대로 적어라, 비서."


 군죠는 자기가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내게 명령했다.




 All or Nothing




 사장님, 아니 여왕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아직 온기가 남은 볼펜으로 그대로 받아적는다.

 All or Nothing.

 다 얻느냐 다 잃느냐.

 Yes냐 No냐.


 "이것이 지금부터 우리가 생각할 세계다."


 군죠는 저 문장이 무슨 뜻인지 고민하는 나는 개의치도 않고 단언한다.


 "진실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그 두 선택지 외의 다른 가능성은 없다."
 "그게 무슨 소린데."

 "서두르지 마라 동정. 자꾸 그러면 안 생긴다."

 "난 동정 아닌데."

 "네가 동정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분명 둘 중 하나겠지. 여기서 아마추어 동정[각주:1]같은 회색지대는 생각하지 않는다."

 

 0 or 1


 군죠는 내게 그렇게 쓰게 시킨다.


 "앞으로 우리는 0과 1밖에 없는 세계를 생각할 것이다. 0.5나 2같은 숫자는 없는 세계지. ......자, 그러면 거짓말쟁이 문제로 돌아가볼까."


***

 문제. 이 중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A. "B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B. "C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C. "A와 B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


 "진실이냐 거짓이냐. A,B,C가 한 말은 무조건 둘 중 하나다."

 "아, 그렇군."

 "여기서 진실이면 0, 거짓이면 1이란 숫자에 대응시킬 거다."



 진실 ⇄ 0

 거짓 ⇄ 1


 "......어? 뭐라고?"

 "머리가 참 나쁘군. .......뭐, 곧 이해될 거다. 그리고 A, B, C가 한 말을 각각 변수 x, y, z에 대응시킬 것이다."

 "무슨 소리야?"
 ".......훗. 변수명으로 a, b, c를 써도 되지만 x, y, z가 좀 더 변수답겠지."

 "야. 내 말 듣고 있냐?"

 "x, y, z엔 각각 0이나 1 중 한 값이 들어간다. 참이냐 거짓이냐에 따라서."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군죠는 자기중심적인 녀석이라 내가 이해했는지는 신경도 안 쓴다.

 이대로라면 이해하는 것도 그만두고 미쿠냥 팬도 그만두게 생겼다.

 

 "안심해라. 다음 표를 보면 알 것이다."


 A의 말이 진실 ⇄ x=0

 A의 말이 거짓 ⇄ x=1


 B의 말이 진실 ⇄ y=0

 B의 말이 거짓 ⇄ y=1


 C의 말이 진실 ⇄ z=0

 C의 말이 거짓 ⇄ z=1


 "........으음, 그러니까 x가 0이면 A가 참말쟁이, x가 1이면 거짓말쟁이라는 거야?"
 "뭐 그렇다. 예를 들면,"


 A : 참말쟁이

 B : 거짓말쟁이

 C : 참말쟁이


 "...이면,"

 x=0

 y=1

 z=0


 "...가 된다."

 ".........겨우 이해한 것 같네.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야? 그냥 문자로 치환한 거잖아."

 "훗.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변수로 치환하는 그 행위야말로 중요한 거다."


 군죠가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건방지게 말한다.

 이 대응과 그뢰브너 기저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가.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군죠가 충고한다.


 "어이, 혼죠. 거짓말쟁이 문제를 다시 봐라."

 A. "B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B. "C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C. "A와 B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나는 군죠 말대로 문제를 다시 본다.

 ......A는 B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게 참이라면, 으음 그러니까...... x=0이면 B는 거짓말을 하는 게 된다.

 응? B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B의 진술이 거짓말이라는 거니까 그 때는 y=1이 된다.

 x의 값에 의해 y가 결정된다?


 "잠깐만."


 난 무의식결에 혼잣말을 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어떨까.

 A가 한 말 "B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가 거짓말이라면?

 이 때는 x=1이다.

 그러면 "B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가 거짓말이 되니까, B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게 된다.

 알아먹기 참 복잡하다만.

 결국 B가 한 말은 참이므로 y=0이 된다.

 역시 x의 값이 y를 결정한다.


 나는 지금 생각한 것을 종이에 정리한다.


 ① A가 참말쟁이라면 B는 거짓말쟁이

 x=0 ⇒ y=1


 ② A가 거짓말쟁이라면 B는 참말쟁이

 x=1 ⇒ y=0


 "드디어 뭔가 안 것 같네."


 묵묵히 종이를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군죠가 말을 걸었다.

 나는 무심결에 답한다.


 "군죠, 이거 y는 x에 대한 함수라는 뜻이야?"

 "함수라...... 뭐 그렇게 봐도 되겠지. 그러면 y는 어떤 함수일 것 같은데?"

 으음.

 ① x=0 ⇒ y=1

 이니까,

 y=x+1

 인가?


 아니다, 그러면 x=1일 때 y=1+1=2가 되니까

 ② x=1 ⇒ y=0

 하고 맞지 않는다.

 이건 아닌가.


 ①과 ②를 만족하는 함수가 뭐가 있을까.

 깊이 생각에 잠긴 내 옆으로 군죠가 얼굴을 들이민다.


 "뭐야, 답 나왔네."

 "우에?"

 놀란 나머지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거 맞다고."


 군죠가 가리킨 것은


 y=x+1


 였다.

 "아니, 무슨 소리 하는거야. x=1을 대입하면,"


 y=1+1=2


 "...니까 0이 안 되잖아?"


 난 그 부분의 검증은 끝냈기에 자신만만한 얼굴로 군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불쌍한 강아지라도 된 것처럼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군죠가 한숨을 쉰다.

 '이거야 원' 이라는 말도 내뱉을 것 같다.

 이건 혼죠 케이스케도, 군죠 스즈도 아닌 쿠죠 죠타로의 대사다만.


 "잘 들어, 혼죠. 1+1은 0이야."






  1. 素人童貞. 성매매는 해 보았지만 그 외의 여성과는 성행위를 하지 않은 남자―역자 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