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령 2017. 10. 24. 16:12

원문


 『돌줍기 게임』


 패배하면 죽음.

 난죠 씨는 농담으로도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먼 옛날, "아직 완벽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졸업 시험을 스스로 포기하여 유급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참고로 시험은 기본적으로 만점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난죠 씨는 "코코로 쨩이라고 부르지 마!"라는 말도 하지 않고 초전자포  레 일 건  도 쏘지 않으며 하라쇼─라는 대사와 함께 칭찬해주는 일도 없다.


 융통성 없는 괴물.

 그게 난죠 씨다.


 하지만 설마 진짜 목숨을 빼앗기라도 하겠어.

 어떻게든 내가 이기게 해 주겠지 뭐.


 "그런데 난죠, 무슨 게임을 하려고?"

 "대기. 방금 전 그들을 호출. 했어양. 금방 도착할 거라 추측. 이라해."


 그들이라니?

 그 순간 정체불명의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나, 아니 우리를 둘러쌌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수학 배틀 위원회에서 온 수학 배틀 관리위원 뵤도인 메다이(平等院 命題)라고 합니다."


 뭐냐 이 녀석.

 2미터도 훨씬 넘는 몸을 하얀 포로 싹 덮은 남자가 학교 식당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우리를 내려보고 있다.

 아니, 잘 보니 눈도 하얀 포대로 가리고 있어서 우리를 내려보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여기 계신 분부터 난죠 코코로 님, 군죠 스즈 님, 혼죠 케이스케 님이 맞으십니까? 불공정함이 없도록, 여기 계신 모든 분께 평등하고 무례하게 이 탁상 위에서 인사드립니다."


 군죠가 지금이라도 당장 이 녀석을 두들겨 팰 것 같다.

 그 낌새를 챈 건지 뵤도인 메다이는 테이블에서 내려와 내 오른쪽, 맞은편 난죠 씨가 볼 때는 왼쪽에서 우리 둘과의 거리가 균등해지도록 식탁 옆에 섰다.


 "그러면 난죠 님, 이번 수학 배틀의 개요를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응낙. 하지말입니다."

 "자, 잠깐만, 수학 배틀이라니?"
 

 뵤도인 메다이의 임팩트에 밀려서 잠깐 놓쳤는데, 분명 이 사람 자기소개 하면서 수학 배틀 관리위원회라고 말했다.


 "정답. 우리가 이제부터 할 건 수학배틀. 구구구."

 "수학 배틀이라니 내가 아는 그 수학 배틀!?"

 "의문. 그것 말고도 수학 배틀이 존재. 다용?"
 

 위험하다.


 "안심해주십시오, 혼죠 님. 승부가 결착이 날 쯤 저희 수학 배틀 관리위원회가 평등하고 공정하고 공평하게 보상을 회수하겠습니다."


 목숨 역시 그 예외는 아니다.


 "확인. 보상은 승자가 패자에게 원하는 것. 이쌈바. 나는 혼죠 씨의 목숨."

 "알겠습니다. 그러면 혼죠 님께서는 무엇을 바라십니까?

 "으음... 아, 아니 잠깐만! 왜 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야!?"

 그렇다. 왜 처음부터 데스 게임을 전제로 하는 거냐.

 힐베르트와 브라우어도 그 정도로는 안 싸웠다고.


 "자명. 네가 가진 것 중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목숨밖에 없기 때문. 이상."


 망했다...

 아니지, 내겐 군죠가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제안, 군죠에게 부탁해서 수학 배틀 관리위원회째로 사그리 날려주마.


 "야, 헤이스케... 쫑알대지만 말고 마음 똑바로 먹으란 말이야! 너 남자잖아!"
 

 빌어먹을.

 아니 젠장 이런 거 싫다고.


 "아니! 목숨을 걸으라 해도 말이지! 무슨 게임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

 "그렇군요. 그 말씀도 그렇습니다. 난죠 님, 어떤 게임으로 하실 지 정하셨습니까?"


 잊을 뻔 했는데 이 상황은 애당초 boolean ring의 구체적인 예시를 알기 위해 시작한 數치플레이 게 임  였다.


 "과연. 내가 제안하는 게임은 돌줍기 게임. 뿅."


 돌줍기...?


 "설명. 지금 할 돌줍기 게임은, 어떤 조건 하에 몇 개의 돌무더기에서 돌을 번갈아 가져가다가 가져갈 돌이 없으면 패배하는 게임. 이애오."

 "그렇군. 서양에서 님(NIM)이라고 부르는 게임 맞지, 코코로?"
 "정답. 인 거에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설명. 이제부터 군죠 씨와 돌줍기 게임. 제가 직접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러더니 군죠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컵을 6개 가져와서는,


 ◯◯◯

 ◯◯

 ◯


 처럼 놓아 돌무더기 세 개를 만들었다.


 "편의상. 이들을 무더기 A, B, C라고 명명. 마시쩡."


 A:◯◯◯

 B:◯◯

 C:◯


 "규칙. 이제부터 이 컵들을 군죠 씨와 번갈아 가져간다, 저항. 한 번에 컵을 얼마나 가져가도 상관없는 것. 데프픗. 하지만,"

 "한 무더기에 있는 컵만 가져가야 한다 그거지?"

 "정답."


 한 무더기에서만...?


 "그럼 군죠 씨와 돌줍기 게임을 시작. 케로."
 "자, 나부터 가져가지."


 A:◯◯◯

 B:◯◯

 C:◯


 군죠는 무더기 A에서 컵을 두 개 가져갔다.


 A:◯

 B:◯◯

 C:◯


 "다음. 내 차례, 임다."

 A:◯

 B:◯◯

 C:


 난죠 씨가 무더기 C에서 컵 하나를 가져갔다.
 남은 산은 두 개 뿐이다.

 "...그렇구만. 이제 내 차례군."

 A:◯

 B:◯

 C:


 군죠는 무더기 B에서 컵을 하나 가져갔다.

 다음 차례엔 무더기 A나 B에서 컵을 하나 가져가야만 한다.


 "내 차례. 이라능."


 A:

 B:◯

 C:


 난죠 씨는 A를 골랐다.


 "그럼 마지막으로!"


 A:

 B:

 C:


 이렇게 무더기가 모두 없어졌다.

 다음 차례인 난죠 씨는 컵을 더 이상 가져갈 수 없다.


 "결론. 이 승부는 내 패배. 군죠 씨의 승리. 데찌."

 "야호! 운이 좋았구만!"


 그렇군.

 가져갈 수 없는 쪽이 진다는 건 거꾸로 말해 마지막으로 컵을 가져가는 사람이 이긴다는 뜻인가.

 어떻게 컵을 가져가야 이길 수 있을 지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게임이라는 거군.

 이렇다면 상대가 아무리 난죠 씨라 해도 내가 이길 수도 있겠다.


 "보충. 이번 게임은 돌무더기를 4개로 하고 승부, 이옵니다. 게임은 총 다섯 판, 이긴 횟수가 많은 쪽이 승리, 여요. 선공은 전판에서 패배한 사람. 쵸피."

 "알겠어. 그 조건으로 승부를 받아들이지."


 이 게임에는 분명 수학적인 필승법이 있을 것이다.

 그걸 다섯 판 안에만 찾아내면 질 일은 없다.


 "그러면 혼죠 님, 승리했을 때 얻을 보상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보상이라......

 나는 목숨을 걸었다.

 그에 어울리는 것을 받아야 타산이 맞다.


 "......난죠, 내가 이기면 네 웃는 모습을 보여줘! 필사적으로 행복한 웃음을 보여달라고!"

 ".....................승인."


 난죠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하지만 분명히 나를 바라보며 수긍했다.


 "게임, 규칙, 조건, 보상. 모두 다 정해졌군요! 그럼 이제부터 수학 배틀을 개시하겠습니다!"


 뵤도인 메다이가 동전을 허공을 향해 던졌다.

 손바닥으로 기세 좋게 받아낸다.


 "보십시오! 동전이 앞면을 드러낸 채 균등하게 절반으로 쪼개졌습니다! 난죠 님이 선공입니다!"


 A:◯◯◯◯◯

 B:◯◯◯◯

 C:◯◯◯

 D:◯◯

 

 테이블 위에 컵이 놓였다.

 난죠의 제안에 따라 5, 4, 3, 2개로 컵을 놓았다.

 자, 어떻게 가져갈 테냐.


 "내 차례. B에서 4개. 바요엔."


 A:◯◯◯◯◯

 B:

 C:◯◯◯

 D:◯◯


 아니 뭐 하는 거야?

 단숨에 무더기 하나가 사라졌다.

 가져가는 갯수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나도 질 수는 없다.


 "나는 A에서 4개."


 A:◯

 B:

 C:◯◯◯

 D:◯◯


 이걸로 무더기는 3개, 컵은 6개 남았다.


 "내 차례. C에서 3개. 할게유."


 A:◯

 B:

 C:

 D:◯◯


 고작 세 턴 만에 컵이 3개만 남았다.

 여기서 내가 A에서 하나를 가져가면 다음 차례에 난죠가 D에서 2개 가져갈 테고, 그러면 난 가져갈 컵이 없어져서 진다.

 하지만 내가 D에서 하나 가져가면....


 A:◯

 B:

 C:

 D:◯


 나는 D에서 컵을 하나 가져갔다.


 "내 차례. D에서 하나. ура우라."


 A:◯

 B:

 C:

 D:


 "내 차례인가. D에서 하나 가져가지."


 A:

 B:

 C:

 D:


 "제 1회전, 난죠 님은 더 이상 컵을 가져갈 수 없으므로 혼죠 님의 승리입니다!"


 됐다! 이겼다!

 뭐야, 쉽잖아.


 "그러면 이어서 제 2회전을 시작하겠습니다. 패배하셨던 난죠 님이 선공이십니다."


 A:◯◯◯◯◯

 B:◯◯◯◯

 C:◯◯◯

 D:◯◯


 "B에서 3개. 가져가유."


 A:◯◯◯◯◯

 B:◯

 C:◯◯◯

 D:◯◯


 이번엔 가져가는 갯수를 바꿨다.

 그렇다면 바로 공격하자.


 "나는 A에서 5개."


 A:

 B:◯

 C:◯◯◯

 D:◯◯


 "D에서 1개. 헤이헤이."


 A:

 B:◯

 C:◯◯◯

 D:◯


 "......나는 C에서 3개."


 A:

 B:◯

 C:

 D:◯


 "B에서 1개. 에엑따."


 A:

 B:

 C:

 D:◯


 "D에서 1개."


 A:

 B:

 C:

 D:


 "제 2회전, 다시 혼죠 님의 승리입니다!"


 좋아 좋아 좋아.

 이걸로 2연승이다.

 대강 어떻게 해야 할 지 감 잡았다. 무더기 2개에서 컵 하나씩, 그러니까

 A:◯

 B:◯

 처럼 되게 컵을 가져가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이 컵을 가져간 후 내가 가져가면 이긴다.

 이길 수 있어! 앞으로 한 번만 더 이기면!
 

 "제 3회전, 패배하셨던 난죠 님부터 시작합니다!"


 A:◯◯◯◯◯

 B:◯◯◯◯

 C:◯◯◯

 D:◯◯


 "D에서 2개."


 A:◯◯◯◯◯

 B:◯◯◯◯

 C:◯◯◯

 D:


 "그럼 나는 C에서 3개."


 A:◯◯◯◯◯

 B:◯◯◯◯

 C:

 D:


 하지만 이 때의 난 난죠 씨의 입끝이 살짝 올라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A에서 1개. 와후."


 A:◯◯◯◯

 B:◯◯◯◯

 C:

 D:


 "자, 그러면 B에서 1개."


 A:◯◯◯◯

 B:◯◯◯

 C:

 D:


 "A에서 1개. 치이."


 A:◯◯◯

 B:◯◯◯

 C:

 D:


 "...B에서 1개."


 A:◯◯◯

 B:◯◯

 C:

 D:


 "A에서 1개. 뇨와앗."


 A:◯◯

 B:◯◯

 C:

 D:


 뭐지 이건.

 아무리 가져가도 두 무더기가 같아지잖아.

 ....그런가, 한 개씩 말고 두 개 가져가면 되는 건가!


 "B에서 2개!"


 A:◯◯

 B:

 C:

 D:


 "A에서 2개."


 A:

 B:

 C:

 D:


 난죠가 남아 있던 컵 두 개를 전부 가져갔다.


 망했다.


 "제 3회전, 혼죠 님은 더 이상 컵을 가져갈 수 없으므로 난죠 님의 승리입니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졌다


 컵을 쥔 손에 땀이 잔뜩 배였다.

 진정해라 진정해. 아직 2승 1패다. 이길 수 있어.

 아직은 난죠 씨에게 이길 수 있어.


 "그러면 제 4회전, 패배하셨던 혼죠 님부터 시작합니다!"


 그래. 이번엔 내가 선공이다.

 결정권이 있는 만큼 내가 유리하다. 게임을 지배할 수 있다.


 "그러면 A에서 하나."


 데굴 데굴 데굴


 넓은 식당에 메마른 소리가 울려퍼진다.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아래를 보니 분명 방금까지 들고 있던 컵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렇다. 틀림없이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컵이 손에서 미끄러진 거다.


 주워야 한다.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숙인 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떤 사람의 발 근처에 컵이 있었다.

 싸늘한 지면의 감촉이 손을 타고 온 몸을 흐른다.

 그 발이 있는 곳을 올려보니 뵤도인 메다이가 있었다.


 "혼죠 님, 재차 확인해 드리자면 혼죠 님께서 지시더라도 목숨을 잃을 일은 없습니다."

 

 하하. 그렇지. 역시 거짓말이었어.

 사람을 죽인다니 그런 건 비현실적이지.


 "저희 수학 배틀 관리위원회가 책임을 지고 귀하의 목숨을 회수할 뿐입니다. 그 점을 분명히 이해해두시고 냉정하게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단두대.

 나는 1년 전 봄을 떠올렸다.

 동수의 신입생 세미나가 있던 날.

 난죠 씨와 같은 대수 세미나를 들었다.


 난죠 씨는 그 때부터 이미 우수했고, 우수했기에 발표 중 질문도 매서웠다.

 내가 발표할 때 역시, 조금이라도 애매한 표현이 있으면 ''방금 한 말을 들어보니 너는 머리를 쓰질 않는 것 같은데. 내용은 이해하고 있니?"라며 정신공격    數 치 심    을 가했다.

 

 그 때 내 눈앞에 있던, 분필을 열심히 놀리던 위아래 이동식 칠판이 처형장의 단두대처럼 보였다.


 난죠 씨에겐 도저히 이길 수 없어.

 하하, 하하하.









 "어이, 케이스케, 일어났어?"


 정신차리니 군죠가 앞에 있었다.

 컵을 주우려고 한 뒤로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2,3분도 지나지 않았다.


 "......아아......일어났어."

 "괜찮아?"

 "......괜찮아."


 찰싹!

 등에 격한 통증이 느껴졌다.


 "콜록!!"


 나는 그만 기침을 하고 말았다.

 손바닥으로 아주 신나게 때린 모양이다.


 "무슨 짓이야!!"

 "내가 아는 넌 이딴 걸로 끝나지 않는다고!! ......5, 4, 3, 2!"


 찰싹!

 또 손바닥으로 등을 얻어맞았다.


 "아니 그만하라고!"
 "...............자, 이거."


 그렇게 말하더니 떨어져 있던 컵을 건네준다.


 "고, 고마워..."


 나는 바닥에서 일어섰다.


 "군죠 님! 수학 배틀 참가자와의 접촉은 삼가주십시오!"

 "상관없잖아. 힌트가 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군죠는 그렇게 말하고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영역 밖으로 이동했다.

 떠나면서 '힘내'라고 입이 움직인 것 같았다.


 고마워 군죠.

 녀석에게는 이래저래 도움을 받고 만다.


 이렇게 된 이상 죽을 각오로 죽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한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후우....

 최대한 쓰고 싶진 않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난죠 씨에게, 난죠에게 내가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이것 뿐이다.


 평범한 나의 비범한 능력스킬.

 발동하라.


 "수락자이매진 러버(數樂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