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뢰브너 기저와 천재 제4화
『수락자(數樂者)』
"다음. 혼죠 케이스케, 네 차례. 가즈아."
".................."
"불쌍. 네가 어떤 수를 둬도 네 패배는 결정되어 있다. 야레야레."
"혼죠 님, 다음 수가 없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면 곤란합니다. 부디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훗."
"의문. 뭐가 이상한가. yee."
"내 패배가 확정되어 있다고 그러니 말이지."
"이해불능. 네 패배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 키랏."
"난죠, 테이블을 잘 봐."
"웬일. 컵이 늘었다. ......호옹이!?"
"뭘 놀라고 그래. 단순한 이야기지. 컵이 두 개만 남으면 진다, 그러면 컵을 늘리면 되는 거지."
"혼죠 님! 치운 컵을 무더기로 되돌리는 건 규칙 상 금지된 행위입니다!"
"무더기로 되돌리는 건 말이지."
"무슨 말씀이신......아! 설마!"
"그래. 나는 새로운 컵을 창조했다. 수락자로 말이지!"
"(상상대로 창조하는 스킬, 수락자. 풍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설마 정말로 존재했다니!!!)"
"하하핫! 이걸로 틀림없이 내 승리다아아아!!!"
와장창!!!
"커, 컵이 깨지...다니!?"
"한심."
"나, 난죠, 너 무슨 짓을 한거냐!!!!"
"우문. 나는 그저 파괴를 했을 뿐. 만물을 파괴하는 스킬, 천지천재(天地天災)로...... 훗."
"크윽......"
"(하트 오브 디 어스. 먼 옛적 문명 하나를 멸망시켰다고 전해지는 금단의 신의 스킬. 설마 그 스킬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흔들릴 일입니다......)"
"종결. 아무리 컵을 만들어도 이렇게 파괴하면 되는 법. 그아아앗. 이제 빨리 패배를..."
고고고고고고고고고!!!!!!!
"무엇!? 이건 무슨 소리!?"
"훗. 뭐, 확실히 컵을 아무리 창조해도 쓸모없을 지 모르지. 네가 천지천재로 파괴해버릴 테니 말이지. ......하지만 이러면 어떨까."
"서, 설마!?"
"그래. 나는 태양을 창조했어."
"불능. 아무리 나라도 태양은 파괴 불능..."
"자, 난죠. 여기서 지구를 통째로 소멸시키고 싶지 않으면 항복해라!!"
번━━━━━쩍.
"무, 무슨 일이야...!? 내, 내 태양이 사라졌어....!? 난죠가 파괴한 건가......!? 아니, 파괴했다면 태양의 파편이 남아있을 터......이, 이건 무슨 상황인 거냐!!"
"평등."
"!?"
"저희 수학 배틀 관리위원회 역시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했기에 임의로 혼죠 씨의 수락자를 평등했습니다. 스킬을 지배하는 스킬, 평등에 의해서 말이지요!"
"훗, 역시 수학 배틀 관리위원회였나......"
"자, 혼죠 씨, 게임을 재개하십시오!!"
"나, 두근두근 거리는걸?"
"하아?"
"너는 날 정말로 화나게 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여. 미래를 동경하는 사람이여. 슬픔의 수(數)를 낙으로 삼아라... 기어 5!!"
같은 일이 일어날 리는 절대 없다.
이거 망상이 참 길었구만.
에네르기 파를 쏘고 참백도로 싸우고 고무고무 열매를 먹는 건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있을 이야기다.
만일 그런 게 현실에 있었다면 에네르기 파는 물리법칙을 뒤바꿨을 테고 참백도는 화학적으로 분석되었을 것이며 고무고무 열매는 식물학자들이 재배했겠지.
요컨대 비과학적인 능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단 거다. 있다 해도 그건 그 자체로 대단한 발견이며, 일개 시민이 보존해 나갈 대상이 아니라 연구기관에서 연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주인공이 능력을 각성하는 그런 일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서론이 꽤 길어졌는데, 내가 (내 멋대로) 수락자라고 부르고 있는 이 능력은, 능력이라기보단 하나의 증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혼죠 님, 시간 제한을 특별히 정하진 않았지만 너무 오래 고민하시면 배틀 지연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아아, 미안. 그럼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수학 배틀 돌줍기 게임, 현재 혼죠 님은 2승, 난죠 님은 1승입니다. 그러면 이제 제 4회전을 시작합니다. 혼죠 씨가 선공입니다!!"
A:◯◯◯◯◯
B:◯◯◯◯
C:◯◯◯
D:◯◯
나는 눈을 감았다.
네모나고 안에 아무 것도 없는 하얀 상자에 갇힌 상황을 생각한다.
심장 박동이 안정될 때까지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기를 되풀이한다.
네모난 상자는 상하좌우 구별도 없이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었다.
새하얀 광채에 휩싸여 잠이 들려는 그 순간, 눈을 떴다.
공중에 수많은 나이프가 둥둥 떠 있다.
"A에서 하나."
A:◯◯◯◯
B:◯◯◯◯
C:◯◯◯
D:◯◯
나는 무더기 A에서 하나 가져간 모양이다.
"내 차례. C에서 하나, 치코."
A:◯◯◯◯
B:◯◯◯◯
C:◯◯
D:◯◯
난죠는 무더기 C에서 하나 가져갔다.
"A에서 3개."
나는 무더기 A에서 3개 가져간 것 같다.
A:◯
B:◯◯◯◯
C:◯◯
D:◯◯
"내 차례. B에서 3개, 나옹."
A:◯
B:◯
C:◯◯
D:◯◯
반각성(半覺醒).
의사 말로, 눈이 뜨인 듯 감긴 듯한 비몽사몽한 상태를 이렇게 부른다고 했다.
"A에서 하나."
A:
B:◯
C:◯◯
D:◯◯
"내 차례. B에서 하나, 또가스."
A:
B:
C:◯◯
D:◯◯
정신이 들어보니 공중의 나이프가 어느 새 네 개 남아 있었다.
나는 방금 내가 한 "정신이 들어보니"라는 말에 벌써 정신이 들었나 싶어 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쥐었다 펴 본다.
감각이 아직 둔하지만 손은 제대로 움직인다.
됐다. 이번엔 좀 빠르군.
"C에서 하나."
A:
B:
C:◯
D:◯◯
나는 무더기 C에서 컵 하나를 가져갔다.
그 순간 위에 떠 있는 나이프가 사라지는 것을 또렷이 보았다.
"D에서 1개, 피카."
A:
B:
C:◯
D:◯
이번에도 나이프 하나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역시 나이프의 갯수는 컵의 갯수와 일치하는 것 같다.
"자, 그럼 C에서 하나."
A:
B:
C:
D:◯
"마지막. D에서 하나. 씨씨."
A:
B:
C:
D:
나이프가 모두 사라진 순간, 가슴에 지금까지 느낀 적 없는 심한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니 빨간 나이프 하나가 쇄골 사이에 수직으로 박혀 있었다.
사람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그것으로부터 회피하려는 '방어기제'를 시작한다고 한다.
내 경우 스트레스는 數치플레이를 당하는 것이었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은 망상이었다.
마음의 과부하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이 현실을 도피하여 망상 속 세상으로 뛰어든다.
훈련을 거듭해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컨트롤하여 현실에서 망상으로 도망치지 않고 현실로 망상을 가져오는 것, 그게 바로 수락자다.
얼핏 보기에는 쓸데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도 쓸데없다.
'무의식'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점을 빼면.
"제 4회전, 난죠 님의 승리입니다!"
뵤도인 메다이가 목소리 높여 배틀 결과를 알렸다.
"현재 혼죠 님 2승, 난죠 님 2승으로 접전 중입니다! 그러면 이러나 저러나 이번 배틀이 마지막이 되겠군요. 제 5회전을 개시합니다!"
A:◯◯◯◯◯
B:◯◯◯◯
C:◯◯◯
D:◯◯
테이블에 컵들이 놓여있다.
그와 동시에 나이트 14개가 공중에 떠 있다.
이거, 잘 보니 빨간 나이프가 하나 섞여 있군.
아까 가슴을 찔렀던 게 저건가.
"선공은 전판처럼 혼죠 님입니다!"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은 여신이 꿈 속에서 수식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게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라마누잔이 꿈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수식을 발견했다는 것은 틀림없다.
사람은 무의식중에 무언가를 발견하며 그것이 어느 새 의식 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에 집중했다.
"""난죠 코코로가 도쿄 도 수학과 학생 연합의 100대 회장이라는 Boolean ring 위의 다항식환의 잉여환의 그 상이 차 조금 미적지근한 상태다거짓말쟁이 문제 그뢰브너 기너.... Boolean ring도 몰라? 컴퓨의 임의의 원소 a는 a^2=a를 만죠 케이스케 너는 이 곳에서 사망 하0과 1로 이루어진 집합 {0,1}은 Boolean ring돌줍기 게임양에서 NIM이라고 부르는 게패배하면 죽가져갈 돌이 없으면 패배하는다는 건 거꾸로 말해 마지막으로 컵을 가져가는 사람이 이긴다는게임은 총 다섯 판 이긴 횟수가 많은 선공은 전판에서 패배한 사람이렇다면 상대가 아무리 난죠 씨라 해도 내가 이길 수A:◯◯◯◯◯B:◯◯◯◯C:◯◯◯D:◯◯졌다 졌다 졌다 졌다내가 아는 넌 이딴 걸로 끝나지 않는다고!!......5, 4, 3, 2!boolean ring의 구체적인 예시를 알기 위해 시작한 數치플레이"""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이제 나이프도 공포도 모두 날아가 없어졌다.
나는 수락자를 해제했다.
여기 있는 사람 하나 하나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물론 난죠의 얼굴도.
"혼죠 님, 결정을 내리신 모양이군요. 그러면, 무더기 A에서 D 중 하나에서 컵을, 운명의 돌을 집어주십시오!"
뵤도인 메다이가 긴 팔을 휘두르는 과장된 몸짓을 하며 재촉했다.
나는 방금 내린 결정을 확실하게, 천천히 말했다.
"제 5회전, 나는 기권하겠어."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는 복면을 쓴 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혼죠 님!? 제정신이십니까!? 돌무더기에 손도 안 대시고, 아무 행동도 안 하시고 패배를 인정하시려는 겁니까!?"
"행동이라면 이미 했잖아. 항복이라는 형태로."
"승리를 향한 한 줌의 희망마저 버리시려는 겁니까!?"
"희망이고 뭐고 지금 시점에서 이 게임을 내가 이길 가능성은 1도 남지 않았어."
난죠가 살짝 웃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왜냐면 이 돌줍기 게임은 후공 필승 게임이거든."
내 말에 침묵을 지키던 난죠가 입을 열었다.
"정답. 이 돌줍기 게임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돌과 무더기의 배치에 따라 선공 필승인지 후공 필승인지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게임. 데카."
역시 그랬군.
"제시. 간단한 케이스를 들자면, 두 무더기가 같은 갯수로 있을 경우, 즉,"
A:◯◯◯◯
B:◯◯◯◯
"이런 경우는 후공 필승. 헥토. 실제로,"
"상대가 가져간 만큼 나도 가져가면 되지."
"......정답. 두 개 가져갔다면,"
A:◯◯
B:◯◯◯◯
"똑같이 두 개를,"
A:◯◯
B:◯◯
"가져간다. 킬로. 그러면 반드시 마지막에 무더기 하나, 가령,"
A:
B:◯
"처럼 되기 때문에 전부 가져가면 상대는 가져갈 수 없어서 패배. 메가."
"그리고 거꾸로 말해서 선공이 돌의 갯수가 같은 두 무더기만 남길 수 있다면 선공 필승이 되겠지."
"과연. 기가."
"예를 들면,"
A:◯◯
B:◯◯
C:◯
"이런 형태가 있겠지. 이 경우 선공이 C에서 하나 가져가면,"
A:◯◯
B:◯◯
C:
"처럼 되어서 아까 봤던 후공 필승인 형태가 되지. 따라서,"
A:◯◯
B:◯◯
C:◯
"이 형태는 선공 필승이지."
"질문, 그러면,"
A:◯◯◯
B:◯◯
C:◯
"는 선공 필승, 아니면 후공 필승. 테라."
이건 처음에 군죠와 난죠가 연습 게임을 할 때 썼던 형태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건...
"후공필승이지."
"질문. 그 이유는? 페타."
"으음, 상대가 어떤 수를 쓰더라도 후공 필승인 형태로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러지."
"구체적 예시는? 엑사."
"아아, 만약 선공이 A에서 하나 가져가면,"
A:◯◯
B:◯◯
C:◯
"후공은 C에서 하나를 가져가면 돼."
A:◯◯
B:◯◯
C:
"이건 후공 필승인 형태니까 후공이 이기지."
"질문. 그러면 선공이 처음에 B에서 하나 가져간 경우,"
A:◯◯◯
B:◯
C:◯
"이 케이스는? 제타."
"이 경우는 A에서 3개 가져가면,"
A:
B:◯
C:◯
"처럼 되어서 후공 필승인 형태가 돼. 처음에 선공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후공은 반드시 같은 갯수의 두 무더기만 남길 수 있어. 그러니 이 3-2-1 꼴은 후공 필승이어야 해."
"타당. 그러면 혼죠 씨는 우리가 방금 한 5-4-3-2 형태도 이해하고 있으리라 추측. 요타."
그 때, 난죠가 자그마한 얼굴에 씌여진 살짝 큰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두었다.
안경을 벗은 난죠를 보는 건 처음이다.
"환희. 이제부터 같은 동급생으로써 얘기할 수 있겠네."
갑자기 난죠의 말투가 평범해졌다.
"그러면 설명해볼까, 혼죠. 돌줍기 게임에는 선공 필승일지 후공 필승일지 판단할 수 있는 법칙이 있어. 법칙. 그 법칙을 밝히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수의 세계로 갈 필요가 있어. 어폐. 다른 수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겠군. 다른 진법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 즉 이진수를 생각해야 해."
놀랐다.
억양도 상당히 무난하고 말끝마다 붙던 이상한 단어도 없다.
어쩌면 훨씬 옛날엔, 나와 난죠가 서로 알게 되기 훨씬 전엔 이 말투가 디폴트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난죠는 유창하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몰랐다.
난죠 코코로.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생긴, 수수께끼 많은 내 남자인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