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뢰브너 기저와 4색문제 제2화
『나라를 칠하다』
화가 난다.
내 방에 들어서니 여동생이 방바닥에 공을 갖고 놀고 있었다.
여동생 주위엔 쥐 인형과 밟으면 소리가 나는 장난감 따위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여동생이 올해 겨우 5살이라고는 해도 너무 화가 난다.
생각해보면 떡잎마을 신 모 씨 집안에서 항상 폭풍우를 일으키는 그 유치원생도 5살이니까 그런 나이의 애들이란 의외로 모두 그런 건지 모르겠다.
나는 여동생에게 다가가 가지고 놀던 공을 뺏었다.
그러자 여동생은 같이 놀아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본다.
그 웃는 모습에 왠지 나는 열이 올라서,
"뭐."
라고 물으며 공을 집어던지는 척을 했다.
하지만 덕분에 발톱에 반대편 발을 긁히고 말았다.
"아으......!!"
나는 고통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하필 바닥에 구르고 있던 블록을 밟고 말아 그대로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여동생은 내가 무슨 꼴을 당하는 지는 상관없다는 마냥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여동생의 태도가 맘에 안 들었다.
그래서 나는 벌떡 일어서 쌓기블록을 하나 걷어찼다.
하지만 쌓기블록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왼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통증만 받았을 뿐이었다.
썩을.
나는 그 말만 던지고 방을 나왔다.
***
카페에는 여전히 나와 칸나 말고 손님이 없었다.
계속 이러면 이 가게 경영에 문제라도 생기는 거 아닐까 걱정도 된다만 나로서는 말을 맘껏 할 수 있는 이 편이 훨씬 좋다.
"이거면 충분해?"
여동생은 펜 케이스에서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마커 펜을 꺼낸다.
"응. 네 색만 있으면 돼."
나는 여동생이 펜을 꺼내는 사이 준비해 둔 대학 노트를 테이블 위에 폈다.
"근데 뭘 하려고?"
여동생이 펜 케이스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으며 이상하다는 듯 물어본다.
나는 미묘하게 핀트에 어긋난 말로 질문에 답한다.
"지도에는 참 많은 나라가 그려져 있지."
"응, 그러지."
"그리고 지도의 장점은 각 나라의 모양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는 거야."
"모양?"
"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엔 나라가 참 많지. 지리 부도에는 56개국이 있다고 나와 있네."
아깝다. 나라 하나만 더 있으면 그로텐디크 소수인데.
"그게 왜?"
"지도를 보면 각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국경이 그어져 있지.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지도처럼 검은 국경선이 그어져 있지는 않아. 어디까지나 나라와 나라를 쉽게 구분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그은 선이지."
"정말로 선이 그어져 있으면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선이 쭉 뻗어 있을 테니까 되게 이상할 거 같아."
"그렇겠지. 그러면 나라와 나라를 구별할 방법으로 선 긋기 말고 다른 걸 생각해보자."
"다른 방법?"
"응. 뭐가 있을까?"
"어...... 으음...... 그런데 국경이 있으니까 나라가 구별되는 거 아냐? 선을 안 그으면 힘들 것 같은데?"
"답은 색이야."
"색?"
테이블 옆에 있는 여동생의 핑크색 우산에서 물방울이 맺혀 떨어진다.
비는 아직도 멈출 기미가 없다.
"색을 잘 칠하면 나라를 구별할 수 있지."
"흐에?"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메리카의 56개국을 모두 다른 색으로 칠하려면 색이 몇 개 필요할까?"
"......56개?"
"정답!"
"당연한 거잖아?"
"그래, 그렇지. 하지만 방금처럼 검은 국경선을 직접 그을 때와 다르게, 색을 칠함으로써 색과 색 사이에 국경선이 생겨."
"무슨 뜻이야?"
"예를 들면,"
나는 대학 노트에 원을 그리고 절반은 빨간색, 나머지 절반은 파란색으로 칠했다.
"이 원은 두 색으로 칠해졌어. 빨간 영역과 파란 영역. 이 두 영역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지."
"......빨강이랑 파랑이 접하는 부분 말이지?"
"맞아. 이렇게 영역을 다른 색으로 칠하면 직접 선을 긋지 않아도 경계선이 자연스레 생기지."
색을 칠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경계선이 생긴 거 아니냐는 츳코미는 받지 않겠다.
중요한 건 다른 색을 칠하면 다른 나라를 구분할 수 있다는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56색은 아무래도 낭비가 심하지. 특촬물에서 보스를 쓰러뜨리는 데 2초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색을 좀 더 줄일 수 없을 지를 생각해보자."
"응? 나라 하나에 색 하나여야 되는 거 아냐?"
"아니, 꼭 그렇지 않아도 돼. 간단한 예시를 보자."
부도에서 일본 지도가 있는 페이지를 폈다.
그리고 도쿄 근방을 가리켰다.
"여기 도쿄, 치바, 카나가와가 있지. 위치적으로는,"
도쿄 치바
카나가와
"이렇게 도쿄 오른쪽에 치바가 있고 도쿄 아래에 카나가와가 있어."
"그치."
"비록 치바에 도쿄 이름이 붙은 놀이공원이 있고 카나가와에 마치다 시라고 도쿄 도에 속한 시(市)가 있지만, 그래도 도쿄랑 치바랑 카나가와는 전혀 다른 자치단체야." 1
"마치다 시는 멀쩡히 도쿄 도에 있잖아?"
"어, 어쨌든. 이 셋을 색깔로 구분하고 싶다고 하자. 색깔 몇 개면 될까?"
"으음, 세 개?"
"그럼 칠해봐."
노트에 도쿄, 치바, 카나가와를 대략적으로 그리고 여동생에게 마커 펜으로 칠하게 한다.
"도쿄는 빨간색, 치바는 노란색, 카나가와는 파란색으로 칠해볼래?"
도쿄 치바
카나가와
"이러면 도쿄와 치바, 카나가와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지. 오! 마치다 시도 빨간색으로 칠하다니 대단한 걸!"
"그러니까 마치다 시는 도쿄에 있다니깐!"
"미안, 미안."
여동생이 토라진 것 같아 적당히 사과하며 어물쩡 넘긴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애니가 마치다 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했나보다.
이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하지만 사실 세 색깔을 다 쓰지 않고도 이들 지역을 구별할 수 있어."
"에?"
"한번 치바를 파란색으로 칠해보자."
"안 돼━치바의 땅콩 색이━"
치바가 땅콩 색이면 도쿄의 빨간색이랑 카나가와의 파란색은 도대체 뭐란 말이니?
도쿄 치바
카나가와
"치바가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세 지방이 잘 구분되지?"
"으음!? 뭐, 뭐 어쨌든 치바와 카나가와는 직접 경계를 두고 접한 게 아니니까 같은 색으로 칠하지 않아도 구분하는 데 문제는 없다는 걸 알 수 있지."
"치바랑 카나가와 둘 다 도쿄하고만 붙어있으니까, 색깔은 도쿄하고만 다르면 된다는 거구나."
"그렇지. 따라서 이 경우 두 색만 있으면 모든 지역을 구별할 수 있어."
"그렇구나."
칸나는 노트에 그려진 지도를 보며 고개를 꺼덕인다.
딸기 타르트가 작은 접시 위에서 반짝 빛났다.
"그럼 여기에 사이타마를 추가해보자."
사이타마
도쿄 치바
카나가와
"보다시피 사이타마는 도쿄와 치바랑 접해있어."
"지도에서도 접한 걸로 나오네."
"방금처럼 도쿄에 빨간색, 치바와 카나가와를 파란색으로 칠하면 문제가 생기지."
사이타마
도쿄 치바
카나가와
"문제라고?"
"응. 사이타마를 칠할 색이 없어져."
"......아!"
"그렇지. 사이타마를 빨간색으로 칠하면 도쿄랑 겹치고 그렇다고 파란색으로 칠하면 치바랑 겹치지. 따라서 세 번째 색으로 사이타마를 칠해야 돼."
"사이타마 참 어렵네..."
"색채의 나라 사이타마는 왠지 자연으로 가득할 것 같은 이미지니까 초록색을 줘 보자." 4
사이타마
도쿄 치바
카나가와
"이렇게 네 현을 세 색깔로 구별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응. 그러네."
"하지만 새로운 현이 출동하면 어떨까? 바로..."
"뭔데?"
"야마나시 현이야."
사이타마
야마나시 도쿄 치바
카나가와
"야마나시! 포도로 유명하잖아!"
"그래. 포도 생산지로 유명한 야마나시야."
"근데 야마나시가 어쨌단 거야?"
"야마나시가 사이타마, 도쿄, 카나가와 세 현과 모두 접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어."
"어, 정말!"
"지금 사이타마, 도쿄, 카나가와 세 현 모두 다른 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야마나시를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뭘 사용해도 겹치게 되지."
"으으.......그러면 네 번째 색을 쓰는 수밖에..."
"아니, 포기하긴 아직 일러."
나는 희망이 가득한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색칠하는 게 묘하게도 재미있던 지라, 나와 칸나는 둘 다 이상하게 들떠있었다.
"......카나가와를 녹색으로 바꾸자!"
"안 돼! 그건 사이타마 색이란 말이야!"
사이타마
야마나시 도쿄 치바
카나가와
"하지만 이러면 방금 생겼던 문제가 해결되지."
"어엇............아!"
"그래. 카나가와 대신 야마나시를 파란색으로 칠하면 돼."
사이타마
야마나시 도쿄 치바
카나가와
"그러면 야마나시는 사이타마, 도쿄, 카나가와랑 다른 색이 되니까 세이프. 사이타마와 카나가와는 서로 접한 게 아니니까 같은 색으로 칠해도 별 문제 없지."
"오오, 대단해."
"따라서 이들 다섯 현을 칠하는 데는 세 색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걸 알 수 있어."
나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꿀꺽 넘긴다.
가볍게 숨을 내쉬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이걸 보고 녀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지."
"녀, 녀석들이라니?"
"나가노랑 시즈오카야."
바깥에는 비가 한층 더 강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쇼핑백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카페 앞을 지나쳤다.
"시즈오카는 야마나시, 카나가와, 나가노랑 접해있어. 여기서 나가노가 문제가 돼."
"왜?"
"나가노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현과 접한 현이야. 무려 여덟 현이나 이웃하고 있지. 지금까지 꺼낸 현 중에선 사이타마, 야마나시, 시즈오카랑 접해 있어."
나가노 사이타마
야마나시 도쿄 치바
시즈오카 카나가와
더이상 글자로는 지도를 표현하기 힘들어질 정도로 복잡해졌다.
"먼저 시즈오카를 무슨 색으로 할 지부터 정하자. 무슨 색이면 괜찮을까?"
"으음, 시즈오카는 야마나시와 카나가와랑 접하고 있으니까 파란색이랑 초록색은 빼야겠지? 그러니까 빨간색이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나가노 사이타마
야마나시 도쿄 치바
시즈오카 카나가와
"그러면 이제 나가노를 칠해보자. 방금 말했듯 나가노는 사이타마, 야마나시, 시즈오카랑 접해 있어. 따라서,"
"어떤 색을 써도 겹치는구나!"
"그래, 이제 한계가 된 거야. 나가노는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그 어느 색으로 칠해도 다른 현이랑 겹쳐. 따라서 제 4의 색, 노란색으로 칠해야 해."
"......나가노."
나가노 사이타마
야마나시 도쿄 치바
시즈오카 카나가와
"어쨌든 이렇게 이들 지역을 다 칠했어. 이들 일곱 지역은 네 색만 있으면 충분히 칠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지."
"그럼 현을 더 늘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하려던 말을 여동생한테 뺏겼다.
"그렇네. 일본에는 군마, 토치기, 이바라키 같은 키타간토(北関東) 지역이랑 후쿠오카, 기후, 아이치 같은 츄부(中部) 지방 등등, 우리가 아직 고려하지 못한 곳이 잔뜩 있지. 그 지역까지 하나하나 추가하면서 일일히 검증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야. 이쯤에서 비밀병기를 꺼내보려고 해."
"비밀병기라니................아앗! 설마!"
콰광 하고 천둥이 친다.
일기예보에서는 뇌우가 계속될 거라고 했다.
"그래. 그뢰브너 기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