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령 2018. 7. 26. 04:52

원문



 오늘의 라떼 아트 〈그뢰브너 기저〉


 타임라인을 쭉 내리다가 그런 동영상을 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음을 찍고 리트윗을 한다.

 그리고 내 팔로워 수가 또 하나 줄어드는 걸 확인한다.

 손가락도 쉴 틈 없이 팔로잉 리스트를 눌러 "귀여운 고양이짤 저장소" 계정에 들어가 계정주가 엄선한 고양이 짤을 처음부터 끝까지 RT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완료. 생각 완료했어."

 눈 앞에 있는 난죠가 콘 스프를 먹던 스푼을 내려놓는다.

 밤 시간의 패밀리 레스토랑.

 내가 모르는 아이돌의 최신 싱글 앨범곡이 가게 안에 흐른다.


 "추정. 도라이 켄은 선전포고를 한 거 같아."


 난죠가 물이 든 컵을 손바닥에 수평이 되게 올리면서 말했다.

 평소라면 흘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선전포고라니, 전쟁도 아니고 무슨 의미가 있는건데."

 "추측. 우리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그 때―라고는 해도 몇 시간 전 오늘 저녁에 있던 일이지만―도라이 켄은 카페에서 4색 문제를 갖고 놀고 있던 나와 칸나를 습격했다.

 도라이 켄은 내 여동생에게 목걸이를 채우고 사슬을 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지는 않았다.


***


 "어이. 이게 목걸이의 열쇠다. 받아둬라."

 도라이 켄은 그러더니 열쇠를 테이블에 던졌다.


 "하, 앞으로 일주일 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이벤트를 할 거다. 오늘은 그 초대장을 주기 위해 왔을 뿐이야."


 자세히 보니 고양이 밑에 하얀 편지같은 게 끼워져 있었다.

 나는 고양이에게 할퀴지 않도록 조심조심 편지를 꺼냈다.

 편지를 펼쳐보니 정확한 장소와 일시가 적혀 있었다.


 "웃기고 있네."


 나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하?"
 "누가 이런 애들 장난에 어울려 주겠냐. 너, 내 여동생에게 뭔가 하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그런 거 내가 용서 못한다. 칸나 더 건들지 마라."

 나는 최대한 센 어조로 일러두었다.

 이러면 찍소리 못할 줄 알았는데, 도라이 켄의 반응은 예상 외의 것이었다.


 "크하! 크하!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시스콘 자식이구만. 뭐, 오든 안 오든 네들 맘이다. 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들은 안 올 수가 없을 거야."


 도라이 켄은 그런 말을 남기고 카페를 떠났다.


***


 칸나는 지쳐 집에서 곤히 잠들었다.

 나는 도무지 도라이 켄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난죠와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도라이 켄 걔는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너 걔랑 수학 배틀 해 봤다면서?"

 "단적.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두뇌는 어른, 마음은 어린이'야. 수학적 능력은 꽤 우수하지만 윤리관이나 도덕관은 결여되어 있어."

 어디 나오는 명탐정이라도 되나.


 "그치만 여하튼 꼬마라는 거지? 뭐 별스러운 짓은 못 하겠지?"

 "아니. 그는 현재 동수의 회장.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어. 과격한 발언을 해대는 위험 인물이 핵무기 버튼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쉽게 알 수 있겠지."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무섭다.


 "대책. 최고의 대책은 접촉을 안 하는 거, 야. 굳이 그 이벤트에 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네가 억지로 참을 필요도 없어. 네 여동생의 신변에 위험이 생길 가능성이 보이면 바로 경찰을 부르자고. 권력에는 권력, 이지. 그리고 평소에는 나랑 함께 칸나를 보호하자."


 든든하다.

 이럴 때 난죠는 힘이 되어준다.

 하지만 무언가 놓친 것 같은 느낌이 마음에 걸린다.

 인생이란 기구한 것이라 단 한번의 선택이 이후의 운명을 크게 좌우한다.

 그런만큼 신중하게 행동하고 싶다.


 "의문. 한 가지, 신경쓰이는 게 있어."

 오오. 난죠도 역시 신경쓰이는 게 있었나.

 역시 우리들의 두뇌란.


 "오! 뭔데!?"
 "유한체."
 "응?"
 "유한체에서 풀어도 되지 않았어?"

 단숨에 이야기가 알 수 없어졌다.


 "4색문제. 너는 4색문제를 다룰 때 복소수체에서 생각했지만, 유한체에서도 비슷하게 될 거야."
 "???"
 "설명. x^4-1의 경우 characteristic 5인 체 F_5 위의 다항식으로 생각하자는 거야. F_5={0,1,2,3,4}에서 x^4-1=0을 만족하는 원소는 페르마의 소정리에 의해 1,2,3,4. 따라서 네 개의 서로 다른 원소가 다항식의 근이 되지."

 "자, 잠깐만. 언제부터 수학 이야기가 된 거야?"
 "당혹. 그러니까, 한 가지 신경쓰이는 게 있다고 했잖아."

 맨날 수학만 하는 녀석은 이렇게 딴 이야기를 하다가도 수학으로 휙 틀어버리곤 한다.

 아니, 오히려 수학 얘기가 일상적이다.

 조만간 산에 들어가 수학만 하겠다고 해도 하나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속행. 계속 얘기하지. 도쿄와 치바를 다른 색으로 칠하는 연립방정식,"


 x^4-1=0

 y^4-1=0

 (x+y)(x^2+y^2)=0


 "...를 생각했을 때, 너희는 이걸 복소수체 위의 연립방정식으로 생각했어."
 "응. 실제로 x^4-1을 만족하는 x는 1, -1, i, -i니까."
 "다만. 이 방정식을 꼭 복소수체에서 생각할 필요는 없어. 더 작은 체를 생각해도 충분하지."


 여기서 체는 게바라가 아니라 field, 즉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사칙연산이 가능한 대수적 집합을 말한다.


 "그게 방금 말한 F_5={0,1,2,3,4}고?"
 "정확."

 "그거 정수를 5로 나눈 나머지를 모은 집합이랑 같은 거지? 그럼 1^4=1이고 2^4=16≡1 (mod 5)이고 3^4=81≡1 (mod 5)이고 4^4=256≡1 (mod 5), 그러니까 모든 수가 4승해서 1이니까 x^4-1=0을 만족하겠네."

 "정답. 거기에 x^4-1=0, y^4-1=0을 만족하는 x,y가, 즉 {1,2,3,4}가,"

 (x+y)(x^2+y^2)=0


 "...을 만족하려면 x,y가 달라야 해."

 "그러네. 예컨대 x=1, y=2일 때는,"

 (1+2)(1^2+2^2)=3*5=15≡0 (mod 5)


 "...이렇고, 반대로 x랑 y가 같을 때, 가령 x=y=1일 땐,"


 (1+1)(1^2+1^2)=2*2=4


 "...여서 0이 안 되네."

 "요약. 방금 논의를 종합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어."


 F_5 위의 연립방정식

 x^4-1=0

 y^4-1=0

 (x+y)(x^2+y^2)=0

 의 해가 존재한다.

 ⇔

 도쿄와 치바를 4색 중 다른 색으로 칠할 수 있다.


 "오오─!"
 "따라서. 복소수 체가 아니라 F_5 위에서 4색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겠, 지."

 여기서 우리에게 두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Case 1 ".......하지만 여기에 무슨 장점이 있는 거지?"
 Case 2 ".......이거 4색이 아니라 일반적인 n색에 대해서도 되나?"

 사실 나는 4색문제 얘기가 아니라 도라이 켄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싶지만, 지금 상태의 난죠를 멈추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난죠가 지적 호기심을 다 채울 때까지 어울려주는 게 친구로서의 도리 아니겠는가.

 도라이 켄 대책 회의는 그 뒤에 해도 된다.


 그러면 둘 중 어느 질문, 어느 선택지가 지금 이 상황에 어울릴까?
 으음. 어렵네.


 그렇지. 이럴 때는 randomness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Case 1, 뒷면이 나오면 Case 2를 고르자.

 이러면 1/2의 확률로 둘 중 하나로 결정되겠지.

 양자역학적으로는 두 세상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가 되려나.

 사실 나는 양자역학을 배운 적은 없는 지라 드라마같은 데서 나오는 느낌적인 느낌밖에 모르지만.


 뭐, 어려운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자.

 나는 10엔짜리를 하나 꺼내 위로 던진다.

 그리고 손등으로 동전을 받아 어느 쪽이 나왔는지 확인한다.


 그렇군. {앞, 뒤}인가.

 확실히 이 질문이 지금 상황에 어울린다.

 아니, 오히려 이거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겠지.

 역시 하나님. 리얼 갓갓하시네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Case {1,2}를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