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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과 거유』


 "에휴, 오랜만에 보는 건데 진짜 최악이다?"

 군죠 스즈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멋대로 내 옆에 앉는다.

 아아, 최악이다.

 "설마 나 잊은 건 아니지?"

 "하하, 그럴 리가 있니."

 이런 악우(惡友)를 어떻게 잊겠는가.

 그런데 이 녀석, 왜 아직도 대학에 있지?

 "아아, 목이 좀 마른데."

 군죠는 내 컵을 빼앗아 차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리고 키햐아 거리더니,

 "한 잔 더!"

 탁! 하고 기세 좋게 컵을 책상에 내리친다.

 별도리가 없으니 정수기 근처에서 컵 두 개를 가져온다.

 이러니 내가 빵셔틀인 것 같지만, 내가 얘 성격에 어울려주고 있는 거지 내가 진짜로 빵셔틀인 건 아니다.

 비록 나랑 고등학교만 빼고 소,중,대학교를 같이 한 징글징글한 소꿉친구이긴 하지만,

 그 관계가 주종관계였던 건 아니다. 대등한 친구다.

 나는 군죠에게 솔직히 의문을 털어놓는다.

 "너 근데 왜 아직도 대학에 있냐?"

 "응? 너랑 같은 학년이니까."

 무슨 소리지? 이 녀석도 휴학했던가?

 성적이 그렇게 나빴던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고 있으니 서서히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유학?"
 "어."

 그렇지. 군죠는 지난 1년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런데 어디로 갔다 왔더라......

 "캘리포니아."

 군죠가 위압감 있게 답한다.

 그리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쉰다.

 "완전히 잊은 모양이니까 설명은 해줄게. 나는 1년 휴학하고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유학 갔다 왔어. 아아, 정말 좋았지─ 역시 자유의 나라란."


 다리를 꼬고 찻잔을 기울이는 군죠의 스타일은 그야말로 훌륭하다.

 데님 숏팬츠와 하얀 티셔츠 밖으로 뽀얗고 늘씬한 팔다리가 뻗어있고, 찰랑찰랑한 생머리는 뒤로 묶고 있다.

 입만 다물면 미인이리라.

 게다가......


 ".......그건 그렇고 너, 뭐라고 할까...... 외모가..... 많이 풍성해진 것 같다?"

 내 눈이 무의식중에 군죠의 가슴을 향한다.

 "아, 가슴 말야? 저쪽 음식들은 칼로리가 높은 게 많아서 말이야. B컵이 단숨에 D컵이 됐어."

 이건 무슨 전개인가.

 구체적인 가슴 사이즈는 관심도 없었는데 아무 스스럼없이 알려준다.

 녀석은 그렇게 옛날부터 개방적이면서도 남자보다 남자다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 내가 유학할 때 연락 한번도 안 주고, 너 배짱 한 번 좋다?"

 "어어...... 아아, 그게 바빠서 말이야."

 작년은 내 첫 졸업학기였다.

 대학원 시험, 졸업 논문, 졸업 세미나 등 할게 너무 많아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뭐 용서해줄게.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나인지 몰랐던 것도 포함해서."


 '그런 것만 갖고 어떻게 아냐'라고 할 뻔했지만, 마음에 담아두고 하하 웃으며 답을 대신한다.

 

 "됐고, 너에게 얘기할 만한 여행 선물이 있지."
 "선물?"
 "뭐, 얘기라기보단 퀴즈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만."
 "관심없어."
 "그럴 줄 알았지. 이걸 풀면 너에게 이 D컵을 만지게 해줄게."

 군죠의 상당히 흥미로운 문제란 흔히 말하는 '거짓말쟁이 문제'였다.


***

 문제. 이 중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A. "B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B. "C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C. "A와 B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


 그렇군. 바로 생각하려니 머리가 꼬일 것 같지만 그 방법을 써서 하나씩 검증하면 되겠지.

 귀류법이다.


 "어때? 풀었어?"
 군죠가 바보라도 보는 듯이 날 바라본다.

 "아아."
 나는 잠깐 머릿속을 정리하고, 숨을 고른 뒤 정답을 말한다.


 "우선 A는 거짓말을 안 하고 있어. 한번 A가 참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호오?"
 "그러면 B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C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거짓이 되지."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 거짓이므로 C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돼. C의 주장은 'A와 B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였으니까, 이게 거짓말이 되지."


 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지금까지 한 추론을 적어본다.


 만약 A가 참말을 했다면

 A=참  (A 'B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참)

 B=거짓 (B 'C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거짓)

 C=거짓 (C 'A와 B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거짓)


 "고로 A가 참말을 했다고 가정할 경우,"

 C. "A와 B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거짓말


 "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흠."

 "하지만 이건 모순이야. 왜냐면 A=참이니까 C의 주장은 맞게 되거든."
 "호호?"

 "따라서 귀류법으로부터 최초의 가정, 즉 'A가 참말을 한다'란 명제는 틀린 게 돼."

 "그래서 답이 뭔데?"

 군죠는 내 생각을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답을 재촉한다.


 "A가 참이라는 가정이 틀렸으니 A는 거짓말쟁이겠지. 그러면 A의 원래 주장이던"


 A. "B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는 거짓말이니까,"


 B. "C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는 참이 되지. 그러므로,"


 C. "A와 B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는 맞는 말이 돼. 정리하면,"


 만약 A가 거짓말쟁이라면

 A=거짓 (A 'B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짓)

 B=참  (B 'C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참)

 C=참  (C 'A와 B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참)


 "처럼 되겠지. 여기에 모순은 없어. 따라서 답은,"


 A가 거짓말쟁이.


 "가 되지."

 나는 군죠를 본다.

 분명 맞는 답을 냈을 터이다.

 자, 어디 와 봐라.

 딱히 D컵에 기대를 품고 있는 건 아니지만.


 "동정이네."

 "뭐?"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내 마음을 뚫어 보고 있는 건가?

 "뭐, 뭐야? 틀렸어?"

 "아니, 틀리진 않았어. 정답."
 "그럼 무슨─"

 "귀류법을 쓰는 녀석은 동정이야."


 나는 군죠의 일침에 말을 잃었다.


 "이런 쉬운 문제에 귀류법이나 쓰고 다니다니 아직도 동정이라고 몸소 인증하고 다니시는군요? 혼죠 케이스케 씨."

 "무, 무슨 소리야 그건!"


 그랬다.

 잊고 있었는데, 군죠 스즈는 자칭 '탈(脫)귀류법주의자'이며 자칭 '귀류법 희생자 협회'의 회원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귀류법을 죄다 직접증명법으로 바꾸는 이른바 증명의 여왕이다.

 허나 동정 대표로써 여왕의 폭거에 입다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반론했다.


 "분명 귀류법을 쓴 증명이 이해하기 힘든 경향성이 있어. √2가 무리수라는 증명도 귀류법을 쓰지 않는 증명이 더 짧겠지. 하지만 이 거짓말쟁이 문제처럼 답을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에 귀류법으로 접근하는 건 효과적이잖아?"


 군죠는 내 추궁에도 까딱않고 여유롭게 비웃는다.


 "크하하. 네 말이 맞아. 미해결문제를 풀 때처럼 답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주제를 연구할 때 귀류법이 훌륭한 수단이 된다는 건 인정하지. 모르는 여성에게 구애할 때 사람은 누구나 동정이듯 말이지. 하지만 말야,"


 군죠가 말을 잇는다.


 "귀류법 외의 다른 접근법을 생각했을 때 재밌고 새로운 관점이 생긴다는 것도 분명하지."
 "......이 퀴즈를 풀 다른 방법이라도 있다는 거야?"
 "............................아아."


 군죠는 의미심장하게 속삭이며 내게 얼굴을 들이민다.

 워낙 갑작스러웠던지라 나는 그대로 경직하고 말았다.

 식당에 인적은 드문 게다가 우리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후우.....하는 군죠의 미지근한 숨결이 내 귀를 자극한다.

 내 심장소리가 군죠에게까지 들릴 것 같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그뢰브너 기저를.....사용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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