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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뢰브너 기저와 연립방정식』
"그래서 어떻게 그뢰브너 기저로 풀 수 있는 거야? ......그보다 애초에 그뢰브너 기저가 뭐야?"
여동생이 질문을 연거푸 쏟아낸다.
처음부터 "그뢰브너 기저라고 알아?"라고 물어온 건 여동생인데, 원래 이렇게 수학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었나?
어쩌면 이 한 시간짜리 짧은 강의로 수학이 좋아졌는 지도 모르겠다.
여동생이 '빨리, 빨리'거리며 나를 독촉하기에, 나는 속으로 여동생이 이해하기 쉬울 단어를 고른다.
"그뢰브너 기저는, 말하자면 iPhone이야."
"iPhone?"
"iPhone은 정말 편리하지?"
"아, 응."
"iPhone뿐만이 아니야. 스마트폰은 요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편리한 물건이지."
"그렇네. 다들 매일 스마트폰을 쓰고 있어."
"그뢰브너 기저 역시 iPhone처럼 편리한 도구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여동생의 눈이 노트를 향하게 한다.
"지금까지 '컴퓨터에서 어떻게 수학을 재현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왔어. 자연수, 정수, 유리수...... 계속 수의 세계를 넓히면서 말이지. 그뢰브너 기저는 그것보다 조금 넓은 세계인 '다항식의 세계'에서 활약하는 강력한 도구야."
"다항식의 세계?"
"x-1이나 y-2같은 거 말이야."
"아아, 아까 나왔던 거 말이구나."
그뢰브너 기저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는 건 왠지 설렌다.
그것만으로도 그뢰브너 기저는 매력적인 단어다.
"그뢰브너 기저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965년경, 부흐베르거라는 오스트리아 수학자의 학위 논문에서야."
"어? 그뢰브너라는 사람이 발견한 게 아냐?"
"그뢰브너는 그의 지도교수, 즉 선생님이었어. 부흐베르거는 자기의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기 이름이 아닌 그뢰브너의 이름을 붙였어."
"오호, 멋지네."
"스티브 잡스."
"엥?"
"......나는 부흐베르거가 컴퓨터와 수학계의 스티브 잡스라고 생각해. 그는 인간의 세계와 수학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켰어. 그리고 그가 발견한 그뢰브너 기저는 이후 Computer Algebra(계산기 대수, 수식처리)라는 하나의 수학 분야를 정립했어."
"대, 대단한 사람이구나..."
"게다가 부흐베르거는 그 때 겨우 23살이었지."
".........오빠랑 동갑이잖아."
여동생이 휴학한 나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본다.
어째서냐.
"나랑 부흐베르거를 비교하는 자체가 주제넘는 짓이지. 게다가 나는 수학을 잘 못하기도 하고."
"어? 그랬어!?"
이건 겸손이 아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나는 수학을 공부하려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솔직히 수학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거꾸로 내가 수학을 잘 모르는 만큼 쉽게 설명하는 데는 자신있지만)
그런 와중 내가 접한 것이 컴퓨터와 수학을 융합한 분야, Computer Algebra였다.
아, 이야기가 잠깐 딴길로 새고 말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그뢰브너 기저의 응용범위는 정말 넓어. 대수학과 통계학부터 해서 다양한 분야의 계산에서 쓰이지. 그리고 이들 계산은 여러 수학 소프트웨어에서 할 수 있어."
"호오."
"게다가 오늘날 수학자에게 컴퓨터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 그러니 그뢰브너 기저는 수학자들이 하는 계산의 기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냐. 특히 대수기하학같은 분야에서는 컴퓨터 계산으로부터 중요한 정리를 발견하기도 하지."
"우와, 정말 대단해. 덕분에 오히려 잘 모르겠어."
이런, 잠시 너무 흥분하고 말았다.
그뢰브너 기저에 흥분하는 건 너무 당연하지만 말이다.
이 김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이야기도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괜히 이야기만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기회에 하기로 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뢰브거 기저의 위대함을 직접 느끼러 가볼까."
"응!"
여동생이 '드디어 하는구나' 라며 밝은 목소리로 답한다.
이제부터 연립방정식을 기계적으로 풀 것이다.
이제 그 연립방정식을 풀 수 있다. 그래, 그뢰브너 기저라면 가능하다.
나는 발밑에서 사과 마크가 그려진 컴퓨터를 주워 올린다.
내겐 뭐든 바닥에 두는 버릇이 있는지라 책상 아래엔 수학책과 코드같은 것이 너저분하게 놓여 있다.
컴퓨터를 절전 모드에서 재시작하여 애플리케이션에 있는 수식처리 소프트웨어 아이콘으로 커서를 옮긴다.
"이건 Mathematica라는 소프트웨어야. 이걸로 수학 계산을 할 수 있어."
"매스매티카?"
"어지간한 이과생은 다 쓸 걸? 대학에서 쓰는 컴퓨터엔 다 기본으로 들어있을 거야. 개인 컴퓨터에 다운로드하기엔 좀 비쌀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단순한 입력만으로 온갖 계산을 할 수 있고, 아름다운 그래프를 그릴 수도 있으니 학습 교재로도 좋다고 생각해. 참고로 WolframAlpha (https://www.wolframalpha.com/) 라는 사이트에서 무료로 Mathematica의 기능들을 이용할 수 있어."
"오호."
"그럼 이제부터 실제로 그뢰브너 기저를 계산해보자."
Mathematica를 켠다.
빨간 두리안같은 로고가 화면에 뜬다.
그리고 '새 문서'를 클릭한다.
(터미널에 직접 PATH를 입력하거나 명령 프롬프트를 써서 켜도 되지만 이게 여동생에게는 이해하기 쉽겠지.)
"우선 GroebnerBasis라고 입력하자."
GroebnerBasis
"그로에브너, 바시스?"
바시스. 천공의 성이라도 하나 무너질 듯한 울림이다. 1
"아아, 그뢰브너 베이스야. 일본어로는 그뢰브너 기저라고 하지. 사실은 Gröbner Basis라고, o 위에 움라우트를 찍어야 하겠지만 영어에서는 oe로 표기해."
"흥."
"다음으로 [ ] 안에 다항식을 넣자. 우선 계산하고 싶은 연립방정식을 넣어보자. 어디 한번 연립방정식"
x-1=0
y-2=0
z-x-y=0
"을 풀어볼까."
"응."
"다항식 x-1,y-2,z-x-y를 넣고,"
GroebnerBasis[{x - 1, y - 2, z - x - y}]
"라고 하자.
"여기 { }는 뭐야?"
"아아, 그냥 다항식을 묶으려고 쓴 거야."
"에이 뭐야. 그럼 이걸로 계산할 수 있는 거야?"
"아직이야. 그뢰브너 기저로 연립방정식을 풀고 싶을 땐 어떤 변수를 소거할 건지 정할 필요가 있어."
"변수를 속어알건지?"
여동생이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 연립방정식을 푼다는 건 변수를 소거한다는 거니까."
"잘 모르겠어."
"예를 들면 예전에 풀었던 연립방정식"
x-1=0
y-2=0
z-x-y=0
"을 z에 대해 풀었을 때 z=3이 나왔지? 이거, 마지막 식"
z-x-y=0
"에서 x랑 y를 소거한 거잖아."
"아, 그렇구나!"
"여기서는 x랑 y를 소거하고 싶으니,"
{x,y,z}
"이 순서대로 입력하자. 이 순서로 입력한 데에는 x와 y를 소거해서 마지막에 z만 남기라는 의미도 있어."
"오오~"
"요약하면,"
GroebnerBasis[{x - 1, y - 2, z - x - y}, {x, y, z}]
"이제 입력하면 돼."
"왠지 복잡해."
"그래도 식 하나 하나는 이해됐지?"
"응!"
"그리고 이제 Shift+Enter를 쳐서 실행하면,"
{-3 + z, -2 + y, -1 + x}
"...가 표시되지."
"이거 혹시 다항식의 집합이야?"
"응. 사실 이게 연립방정식을 이루던 다항식으로부터 유도된 그뢰브너 기저야. 그뢰브너 기저는 '성질이 좋은 다항식의 집합'이야"
"으음. 뭔가 잘 모르겠는걸."
"위 예시를 보자. 잘 보면 { } 안에 다항식이 3개 있지?"
"그렇지."
"그 중 가장 왼쪽에 있는 다항식이 뭐지?"
"음, -3+z?"
"그렇지. 보기 쉽게 순서를 바꾸면,"
z-3
"...이지."
"그런데 이 다항식은 뭐야?"
"이게 방금 봤던 연립방정식을 z에 대해 푼 해야."
"에엣!?"
이미 이해한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확인해본다.
"그러면 {-3+z, -2+y, -1+x} 안에 있는 다른 식은 어떨까?"
"어, 으음."
x-1
y-2
z-3
여동생이 노트에 {-3+z, -2+y, -1+x} 안의 다항식을 거꾸로 쓴다.
"여기에 =0을 붙이면"
x-1=0
y-2=0
z-3=0
"가 되니까,"
x=1
y=2
z=3
"인데, 이거 분명"
x-1=0
y-2=0
z-x-y=0
"...의 해였지!"
"그래. 여기서 그뢰브너 기저라는 건 '연립방정식의 해'가 되는 다항식의 집합이야."
"오오!"
여동생이 감탄한다.
"그럼 다른 예를 찾아보자. 한번"
2x+3y=5
x+2y=4
"를 풀어보자. 우선 손계산으로 풀면 어떻게 되지?"
"으음, 두 번째 식에 2를 곱해서,"
2x+4y=8
"윗 식에서 이걸 빼고,"
"그러면 이제 이걸 사랑스러운 그뢰브너 기저로 확인해보자. 연립방정식"
2x+3y=5
x+2y=4
"...은,"
GroebnerBasis[{2x + 3y - 5, x + 2y - 4}, {x, y}]
"...처럼 되겠지. 이번엔 z가 없으니까 {x,y]로 두자."
"음음."
"이제 Shift+Enter로 실행하면,"
{-3 + y, 2 + x}
"오오?"
"여기에 =0을 붙이면?"
"어, -3+y=0이랑 2+x=0이니까..."
x=-2
y=-3
"아, 근이네!"
"대단하지?"
"응! 중학교때 알았으면 숙제 하는 게 재밌었을텐데."
여동생이 딱따구리처럼 입을 삐죽 세우고 투덜댄다.
여동생이 그뢰브너 기저의 대단함을 이해한 것 같아 굉장히 기쁘다.
그러면 계속 그뢰브너 기저의 매력에 빠져보도록 할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본론?"
"잊었니? 우리는 무리수를 계산하기 위해, 그리고 연립방정식을 풀기 위해 그뢰브너 기저를 도입한 거야."
"아, 그랬지."
"어이, 이봐...... 우리 아직 연립방정식"
x^2-2=0
y^2-3=0
z-x-y=0
"...을 안 풀었잖아."
"끄응... x=√2, y=√3이었지?"
"그리고 z=√2+√3였지."
"아 그랬나... 음? 어? 이미 풀었잖아?"
"루트를 쓸 수 있는 상황에선 풀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z의 최소다항식, 그러니까 √2+√3을 다항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야."
"아, 그렇구나."
"어쨌든 입력해보자."
GroebnerBasis[{x^2 - 2, y^2 - 3, z - x - y}, {x,y,z}]
제발 나와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라며 SSR에 가챠라도 부은 프로듀서처럼 속으로 외치고 Shift+Enter를 눌렀다.
{1 - 10z^2 + z^4, 2y - 11z + z^3, 2x + 9z - z^3}
아아.
그뢰브너 기저가 스크린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정수와 변수, +- 기호가 다항식의 숲을 이루었다.
그렇다. 그뢰브너 기저는 환하게 빛나는 숲이다.
그 숲에는 변수라는 요정이 살고 있다.
변수의 어깨에는 ^가 붙어있다. 이것이 날개다.
그리고 우아하게도, 가장 왼쪽 수풀에는 z의 요정만이 살고 있다.
"나왔다."
"왠지 아까보다 어렵게 생겼어."
여동생이 디스플레이를 보며 말한다.
이거, 그뢰브너 기저의 숲에서 미아가 된 모양이다.
여동생을 요정의 숲으로 인도해주자.
"맨 왼쪽 식을 볼래?"
"좌변? 어, 이거?"
z^4-10z^2+1=0
"응 그거. 이게 √2+√3의 최소다항식이야."
"어, 정말?"
"믿기 힘들면 직접 대입해봐. 여기서는 직접 확인하진 않겠지만, 실제로 z=√2+√3를 대입하면,"
(√2+√3)^4 -10(√2+√3)^2 +1 = 0
"...가 돼. 뭐, 이건 독자에게 연습문제로 남겨두자."
"독자라니... 누구?"
"하하. 수학자라면 다들 이렇게 귀찮은 부분을 생략하는 법이지. 가끔은 저자가 직접 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독자가 어딨는데?"
"뭐, 일단 있는 셈 치자."
요정 이야기로 돌아가자.
"여기서 중요한 건, 맨 왼쪽에 z의 요정님만 사는 다항식 z^4-10z^2+1가 나왔다는 거지."
"요정님?"
"아, 아무것도 아냐... 아아, 여튼 맨 왼쪽에 z만 있는 다항식 z^4-10z^2+1가 나왔다는 거지."
"응, 그렇구나."
"이렇게 z로만 된 √2+√3의 최소다항식을 찾았어. 즉,"
z=√2+√3 ⇆ z^4-10z^2+1=0
"오른쪽에는 이 다항식이 들어가겠지."
"오오~!"
"이건 x랑 y가 함께 있던 식, z-x-y=0만 가지고선 알 수 없는 부분이었지."
"그렇구나─."
"이런 식으로 복잡한 연립방정식도 그뢰브너 기저로 풀 수 있어."
엄밀히 말해 복소수 범위 안에서 푸는 거지만 이건 일단 말하지 말자.
"그러면 지금까지 했던 걸 복습해보자."
나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해 노트에 적는다.
자연수 ← 정확히 계산 가능
정수 ← 정확히 계산 가능
유리수 ← 정확히 계산 가능
실수 ← 소수표현으로 근삿값 계산가능
그러나 근삿값은 수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실수를 두 무리수로 나눠보자.
무리수
┣ 피타고라수 (대수적 수) √2, √3 등등
┣ 아르키메데수 (초월수) π 등등
피타고라수는 다항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 가령
x=√2 ⇆ x^2-2=0
y=√3 ⇆ y^2-3=0
등등.
다항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수학을 정확히 보존할 수 있다.
게다가 그뢰브너 기저를 쓰면 √2+√3같은 새로운 무리수도
z=√2+√3 ⇆ z^4-10z^2+1=0
처럼 다항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지."
"정말 단숨에 썼네. 왠지 배불러졌어."
여동생이 배를 쓰다듬는 제스쳐를 취한다.
"혹시 신경쓰이는 거 없니?"
"으음, 아. '보존'은 무슨 뜻이야?"
"그거 말야? √2는 소수 표현으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 소수는 생고기 같다고나 할까?"
"고기?"
"응. 고기는 처음 나올 땐 좋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하지. 계산에서도 비슷해서, √2를 1.41421356으로 계산하면 점점 오차가 커져. 실제로 √2는 그보다 더 크니까 말이지. 그러니 √2를 냉장고에 넣자."
"냉장고!?"
"응. 그게 다항식으로 보존하는 방법이야. 지금까지 말한 대로 다항식은 정확히 계산할 수 있으니까 부패할 걱정이 없지. 혹시 소수 표현이 필요하다면 해동해서 1.414213562373095048801688724209처럼 원하는 만큼 계산할 수도 있어. 물론 냉장고를 쓰는 만큼 전기세, 그러니까 컴퓨터가 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단점도 있어."
"왠지 이해가 잘 되는 것 같아."
"이렇게 정확히 계산하자는 것이 Computer Algebra의 기본 사고 방식이야."
"신선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고기를 조리하는 거구나!"
뭐, 엄밀하게는 x^2-2=0으로 보존하면 √2와 -√2를 구별할 수 없으므로 'x^2-2=0 and x>0'으로 보존해야 하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니 이건 생략하자.
"그뢰브너 기저로 최소다항식을 구하는 거 말고는 뭘 할 수 있어?"
"그렇네. 최소다항식 말고도 1/(√2+√3)의 분모를 유리화하는 거랑 이중근호 √(5+2√6)을 푸는 거, 그리고 식을 간단히 정리하는 게 가능해,"
"으응, 왠지 어려운 걸."
칸나가 헤매고 있기에 다른 질문을 받기로 했다.
"그럼 또 물어볼 거 있어?"
"으음...... 잠깐 생각해볼게."
여동생이 아까 노트에 요약한 내용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 옆모습이 진지하다.
생각해보니 약 한시간 동안 함께 수학을 생각하며 충실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아르키메데수는 계산 못해?"
여동생이 좋은 부분을 찌르고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실수는 아직 인류에겐 너무 이르다"던 복선을 회수해야겠군.
"√2나 √3은 다항식으로 계산할 수 있었잖아? π는 어떤데?"
"다항식으로는 불가능해. 컴퓨터로 정확히 계산하는 방법은 아직 없을걸."
"흐응, 그래서 실수는 아직 인류에게 너무 이르다고 한 거야?"
여동생이 한심하단 눈빛으로 날 올려다본다.
역시 그 대사를 마음에 두고 계속 싫어하고 있었나 보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약간 부끄럽다.
지금 하던 이야기는 끝내고 정리하자.
"그뢰브너 기저는 굉장히 편리하지만, 계산에 시간이 꽤 걸릴 때도 있어서 효율적인 계산법이 연구되어 왔어."
"흐음...... 근데 말야, 그뢰브너 기저는 대학교에서 배워?"
"어..... 아아, 응. 배우는 사람은 배운다고 할까. 수학과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개념일거야."
"오빠는 언제 배웠어?"
"으음, 나는 3학년 쯤 배웠지?"
"흐응."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아, 아무것도 아냐!"
칸나가 부자연스럽게 눈을 돌린다.
아까부터 계속 찜찜했지만 뭐 상관없으려나. 이야기나 계속 하자.
"그뢰브너 기저라는 건 굉장히 편리한 도구지만 공부하기는 좀 어려워. 대학교 1학년이 그뢰브너 기저의 정의를 잘 이해하려면 두세시간은 들여야 할거야. 정말이지, 어디서 '5분만에 이해하는 그뢰브너 기저'같은 책을 판다면 내가 사고 싶을 지경이다, 하하." 2
"그렇게나 어렵구나."
"그래서 칸나가 그게 뭔지 물어봤을 땐 되게 당혹스러웠는데... 내 설명 어땠어?"
여동생에게 한 시간짜리 강연에 대한 감상을 물어본다.
칸나는 내 눈을 본 뒤 으음, 하고 살짝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입을 열어 말했다.
"생각보다는 재미있었어. 처음엔 수학이 잔뜩 나오니까 많이 어지러웠던 것 같은데... 하나씩 차근차근 생각해보니까 이해한 것 같아. 그래도 아직 그뢰브너 기저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ㅎㅎ...... 아, 그래도 그게 대단하다는 건 알았어! ......게다가 오빠가 공부하고 있는 것이 뭔지 조금은 알 수 있어서 좋았어.........휴학한대서 정말로 걱정했는데......"
여동생이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내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휴학한 뒤 집에만 있는 일이 많아졌다.
정말 내가 이렇게 된 건 내 책임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난 여동생이 날 생각해주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새 이렇게 걱정해주고 있었구나.
여동생과 함께 한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수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뢰브너 기저에 대해 설명할 때, 여동생의 답을 들을 때, 여동생이 성장하는 것을 볼 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설레게 해주었다.
여동생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딱, 딱히 오빠한테 신경 써준 거 아니니까 말이야...............그, 그래도...... 수학 얘기를.......하던 오빠는...........좀 멋있던 거......같아......."
칸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머뭇거렸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이미 저녁이 되어 방 안은 칸나의 얼굴이 간신히 보일 만큼 침침해졌다.
멀찍히 까마귀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우리 둘만의 시간이 찬찬히 흐른다.
그 때,
"오빠! 이, 있잖아!"
여동생이 그렇게 말하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흥분을 했는지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띄고 있다.
무언가 말하려고 한다.
"사실 그뢰브너 기저를 물어본 건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아직 앉아있는 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온다.
그 순간이었다.
여동생이 갑자기 비틀거린다.
큰일이다.
바닥에 어지럽혀져 있는 수학책을 밟은 모양이다.
방 안이 어두워서 그런지 발 밑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여동생을 받치려고 무작정 앞으로 뛰어든다.
━━제발.
물컹.
손에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 느껴진다.
이 물체는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쓰러지려던 여동생을, 그 어깨를 순식간에 안았다.
뒤에서 감싸듯이.
왼손에는 왼쪽 어깨를.
오른손에는 오른쪽 어......
나는 내 오른손을 본다.
여동생의.
여동생의, 아직 성장 중인 볼록한 부분에 내 오른손이 닿아있다.
아니, 닿았다기보다 오히려 주무르고 있다.
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큰일났다.
정말 큰일났다.
러브코미디도 아닌데 내 인생에 이딴 우연한 변태짓은 필요없다.
진정해라. 이런 때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얼굴을 붉히고 '미, 미안!' 하고 말하면 그게 더 문제가 된다.
여동생을 성적인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게 되고 말테니.
결코 그래선 안 된다.
여기선 오빠답게 냉정하고 위트있는 말로 분위기를 풀자.
"하하. 가슴은 윗팔만큼 부드럽다더니 정말이군."
──완벽하다.
굿 잡. 잘 했다.
그리고 여동생을 일으켜 세우고 다친데는 없나 물어보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여동생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더니 끝내 끓는 주전자처럼 되었다.
"오빠 바보!!!!!"
여기서 회상은 끝난다.
그 뒤에 여동생이 한 험담들은 정말 심한 것이라, '최악이야!'나 '정말 싫어!!'같은, 여동생을 사랑하는 오빠로서는 듣고 견딜 수 없는 것 뿐이었다.
정말이지, 이것이 사고였다는 건 자명하지 않은가.
진짜 이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나.
이거 참, 한창 나이의 여동생이란 어렵다.
두 번 다시 수학 가르쳐줄까보냐.
난 정말 싫어!라고 소리치는 정말 싫은 여동생보다,
그뢰브너 기저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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