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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數)'가.... 뭐야?  』


 "아,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뢰브너 기저는 한 다항식환의 아이디얼의 부분집합으로써, 임의의 다항식을 그 부분집합의 다항식들로 계속 나눈 나머지가 유일하게 결정되도록 잡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여동생이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멍해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 방에 멋대로 들어와 느닷없이 그뢰브너 기저의 정의를 물어보는 여동생 때문에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평생 이럴 일은 거의 없겠지.

 "하, 한 번만 더 알려줘!"

 여동생은 내가 어떤지는 상관없이 설명을 재촉한다.

 공부에 열심인 모습에는 솔직히 감동했다만, 한번 더 설명해준대도 아마 횡설수설하겠지.


 "어째서 그런 걸 알고 싶은 건데?"

 날 빤히 응시하는 여동생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역으로 공격하기로 했다.

 "그, 그건........."

 내 공격이 유효했는지 풀이 죽어있던 여동생은 눈을 핑그르르 굴린다.

 긴 눈썹이 창에서 내리쬐는 빛에 희미하게 반짝인다.


 ".....일단 그건 묻지 말아줘."

 그렇게 말하고 쓱 입을 오므린 채 얌전한 표정을 짓는다.

 ――――비겁하다.

 그런 태도로 나오면 아무리 6년 터울 진 나라도 이 이상으로는 추궁이 불가능해지잖아.

 "어쩔 수 없지. 설명해볼까."
 나는 체념하고 혼잣말한다.

 "정말!?"

 아까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칸나는 갑자기 밝은 목소리로 돌아왔다.


 자 그럼... 어디부터 할까.

 단항식 순서(monomial order), 나눗셈 알고리즘, 아이디얼, 힐베르트 기저 정리, ...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 아직 고2밖에 안된 여동생에겐 다변수 다항식조차 위험할 지 모른다.

 더구나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여동생은 수학을 그렇게 잘하지도 않는다.

 나는 밥때를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잔뜩 기대를 품고 기다리는 여동생을 곁눈질하며, 수분간 대책 마련에 집중했다.


 그래.

 "컴퓨터"와 "수"부터 이야기하자.


 ".......수가 뭔지 알아?"

 옆 여동생 방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내 옆에 앉힌다.

 여자와 스쳤을 때 나는 달콤한 감귤 향기가 칸나에게서 풍겨온다.

 책상 위의 수학책을 한쪽으로 치우고 노트를 펼쳐 여동생에게 그렇게 질문했다.

 "어, 수?" 

 칸나는 일본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앵무새처럼 되묻는다.

 "수라니 어떤 수?"
 "그래, 네가 아는 수."

 "1, 2, 3 이런거?"

 "응응, 잘 아네."

 칸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역시 쓰다듬지 않기로 하고 노트에 숫자를 쓴다.


 1, 2, 3, ...


 "이 숫자들을 뭐라고 부르지?"

 노트로 시선을 향한 여동생에게 질문한다.

 "어어, 정수?"

 "그렇지. 정확히는 양의 정수라고 하지. 그러니까 자연수 말이야. 0을 자연수에 넣을지 말지 논하면 종교 전쟁이 일어날테니 일단 0은 빼두자."

 나는 해시태그 #0은_자연수[각주:1]는 잊어두고서 물었다.

 "그럼 자연수로 뭘 할 수 있지?"

 "뭘 할 수 있냐니. LINE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타고난 건지, 칸나는 이따금 이상한 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 반응을 보아하니 안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난 질문을 바꿨다.

 "1+1은?"
 "뭐?"

 "1 더하기 1은?"
 "...2?"
 "정답!"

 좀 오버액션한 것 같지만 난 말을 계속 이었다.

 "다시 말해 자연수에선 덧셈이 가능하지."

 "어, 당연한 거 아냐?"
 "뭐 당연하지."

 "나 초등학생 아닌데..."

 너무 쉬운 정답이라 그런지 칸나가 살짝 삐진다.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 괴롭혀주고 싶은 것이 정상적인 오빠인 법.


 "그럼, 215389+574624는?"

 "우엥?"
 칸나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
 "215389+574624 말야."
 "어어..."
 "정답은 790583이야."

 어처구니가 없어 반쯤 입을 열고 나를 보는 칸나.

 그 입술은 스펀지 케이크만큼 부드러워 보인다.

 "...오빠, 주판 배웠었지?"
 "아니, 내가 계산을 할 수 있던 건.... 이거 덕분이야."

 난 그렇게 말하고선 서랍에서 계산기를 꺼냈다.

 "아까 네가 의자를 가지러 갔을 때 슬쩍 계산했지. 봐."
 "너무해!"
 칸나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외친다.

 이거 이거, 위험한데.

 이대로라면 또 삐지고 말 것이다.

 여동생을 놀리는 건 여기까지만 하자.


 "미안, 미안. ......하여튼,"

 계산기를 책상 위에 둔다.

 "계산기를 쓰면 어려운 덧셈도 쉽게 할 수 있지."

 "응."

 바로 사과해서 그런지 여동생은 고개를 순순히 끄덕인다.

 "그럼, 자연수에선 뺄셈을 할 수 있을까?"
 "으음, 2 빼기 1은 1이고, 7 빼기 3은 4고... 되잖아?"
 "1 빼기 2는?"

 "아."

 "그래. 1 빼기 2는 마이너스 1이니까 자연수가 아닌 수가 나오지."

 "나오네."

 "거꾸로 말하면 0과 음수까지 확장해야, 즉 정수라는 범위에서 생각해야 마이너스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네."

 여동생이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자연수 아래에


 ..., -2, -1, 0, 1, 2, 3, ...


를 적는다.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설명을 계속 한다.

 "이렇게 마이너스를 도입함으로써 수의 세계를 자연수에서 정수로 확장했어."

 "오오―."

 여동생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수도 아까처럼 계산기로 계산할 수 있다는 거야."

 

 139583-4487205 = -4347619


 계산기에 적당히 숫자를 쳐서 계산한다.

 "복잡한 수도 이렇게 작은 컴퓨터로 말이지."

 "컴퓨터? 그게?"
 칸나가 반은 놀란 듯, 반은 기가 막힌다는 듯 묻는다.

 "컴퓨터는 일본어로 계산기니까 말이지. 데스크탑도, 계산기도, 스마트폰도 원리적으론 다 같은 계산기야."

 "호오."

 "이 작은 컴퓨터를 쓰면 어떤 정수건 순식간에, 그리고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 물론 계산 가능한 수 크기에 제한은 있지만, 그래도 이건 정수라는 수학적 대상을 컴퓨터라는 실질적인 대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그렇구나..."

 "이건 마치, 컴퓨터는 수학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존재라는 거야."

 "다리구나."


 그만 이야기에 너무 열을 올린 것 같다.

 수학 이야기라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마는 것이 내 나쁜 버릇이다.


 "여기까지 이해했어?"

 여동생의 상태를 확인하며 묻는다.

 "아, 응. 괜찮아. 어려운 내용도 없고. 그러니까 컴퓨터로 수학 계산을 할 수 있다! 그거지?"

 "뭐 그렇지."

 상태가 괜찮은 듯 하니 이야기를 계속 하기로 한다.


 "정수도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지만, 우린 수의 세계를 좀 더 확장하려고 해."

 "더?"

 "그래, 더. 방금 전엔 뺄셈으로 자연수를 확장했는데, 이번엔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아, 곱셈?"
 "정수끼리 곱셈을 하면 어떻게 되지?"
 "...아, 별 차이 없네."

 "그래. 정수에 정수를 곱해도 정수 그대로지."

 "그럼 나눗셈인가?"
 "그렇지!"


 이번엔 템포가 정말 잘 맞았다.

 나는 노트에


 -2, -1, -2/3, 0, 1, 2, 5/2, 8/3


 를 적었다.


 "이렇게 분수를 포함한 수를 뭐라고 하냐면"

 "유리수!"

 "이번엔 답이 빠르네."

 "그게, 유리라는 여자애가 나오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서..."

 "오호, 그런 소설도 있구나."

 "어, 몰라!? 수학 공부한다면서?"

 "어어, 그게..."[각주:2]


 이야기가 딴 길로 샐 것 같아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간다.

 "하, 하여튼, 이제부터 계산기로 유리수를 정확히 계산하려고 해."

 그렇게 말하고 칸나에게 계산기를 준다.


 71/131 + 37/297


 노트에 이렇게 쓴 뒤,

 "지금부터 이걸로 계산해봐."


 칸나는 계산기를 뻔히 쳐다본 후,

 "아, 잠깐만 기다려줘."

 라 말하고서 치마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다.

 케이스에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스마트폰이다.

 "으음..."

 칸나는 중얼거리며 폰을 만지작대더니

 "이걸로 해도 돼?"

 라 물으며 기본 내장된 계산기 앱을 보여준다.

 "어, 상관없는데. 왜?"

 "계산기는 쓰기 어려울 것 같아서."

 나한텐 스마트폰이 더 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세대가 달라서 그런 걸까.

 이만큼 나이 차이가 나면 세대 차이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속으로 한숨짓는 사이, 칸나가 계산을 끝냈다.


 "혹시 0.66656385야?"
 "어떻게 계산했어?"

 예상했던 답이 나오자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본다.

 "우선 73/131을 계산하니 0.54198473가 나왔어. 그걸 다른 곳에 적어두고 37/297을 계산해봤는데 0.12457912가 나오더라구. 그래서 그 두 값을 더했어. 맞아?"

 "아마 맞을걸."

 "아마라니, 계산 안해봤어?"

 "계산했어. 정확히는, 더 정확히 계산했지."

 너무 지나친 레토릭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이해를 못한 건지, 여동생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의 목적은 수학의 세계를 정확히 재현하는 거야. 0.66656385라는 숫자는 71/131 + 37/297의 값을 어느 정도 잘 나타내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건 엄밀히 말해 '정확히'는 아니지."


 칸나는 내 말을 하나하나 차분히 듣더니 고민한다.

 고민하고 고민하더니, 답을 낸다.


 "0.66656385... 뒤에도 숫자가 있겠구나."

 "그렇지. 유리수는 무한히 긴 소수부를 가질 때도 있어. 유리수를 소수로 고쳐 계산하면 수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고 또 굉장히 편리하지만, 무한히 긴 소수부를 컴퓨터에 집어넣을 순 없어. 따라서..."

 "오차가 생기겠네."


 칸나가 먼저 말을 꺼낸다.

 나는 기쁜 마음을 살짝 억누르고 계속 말한다.

 "수치해석적으로 접근할 거라면 소수 그대로 계산해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는 지금 컴퓨터 대수(Computer Algebra), 그러니까 컴퓨터로 수학적 계산을 정확히 하는 방법을 찾고 있어. 그러니 아까 문제의 답은..."


 "잠깐. 내가 할게."
 여동생이 그렇게 말하더니 내 펜을 가로챈다.

 그러고선 열심히 펜을 굴린다.

 그 때 칸나와 내 거리가 꽤 좁아져서 신경쓰지 않는 척을 했다.


 "우선 71/131 + 37/297의 분모끼리 곱하면..."


 131×297 = 38907


 오른손으로 수식을 쓰고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능숙하게 계산해낸다.


 "그리고 통분해야 하니까 71×297이랑 37×131을 구하면..."


 71×297 = 21087

 37×131 = 4847


 "이제 더하면..."

 21087 + 4847 = 25934


 71/131 + 37/297

 = (71×297 + 37×131) / 131×297

 = (21807 + 4847) / 38907

 = 25934/38907


 "됐다!"
 칸나가 기쁜 듯이 변형된 식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어때?"

 살짝 뽐내는 듯 나를 향해 웃는 칸나.

 바보같으니라고. 이런 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나는 입끝이 헤벌쭉 올라가는 것을 참으려고 안면 근육에 긴장을 줬다.


 "흠흠. 참고로, 25934/38907를 계산기로 구하면 아까랑 같이 0.66656385가 나오는데..."

 "25934/38907가 수학적으로 '정확'하다는 거지?"

 "으응, 그렇지."

 여동생에게 완전히 페이스를 뺏긴 것 같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좀 더 생각해보자. 유리수보다 더 큰 수의 집합을 생각하는 거야."

 "아, 실수(實數) 말이야?"


 여동생이 '그렇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를 쳐다본다.


 "그래, 실수야."

 "그럼 실수도 계산할거야?"

 "............................."

 나는 여동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저녁 햇빛이 우리만이 있는 방 안으로 비쳐 들어온다.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향해 여동생이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깊은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감돌던 가벼운 분위기도 무겁게 바꾸었다.


 "실수는,"

 나는 입을 신중하게,

 그리고, 확고하게 열어 말한다.


 "실수는, 아직 인류에겐 너무 일러."






  1. #0は自然数. 일본 트위터에서 돌던 해시태그의 하나―역자 주. [본문으로]
  2. 유리는 소설 〈수학 걸〉의 여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역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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