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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와 연립방정식』
"연립방정식?"
칸나가 놀란 듯 되묻는다.
"연립방정식이면 x랑 y 나오는 그거?"
칸나가 고개를 갸웃대며 재차 확인한다.
"음, 그거. x랑 y로 된 식이 나오는 거 말이야. 입학시험 같은 데서 많이 풀었지?"
"응. 질리도록 풀긴 했는데...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왜?"
"그도 그럴게, 식을 더했다가─ 곱했다가─ 대입했다가─ 머리가 아주 터질 것 같다구."
"뭐, 그래도 계산 자체는 단순한 작업인걸."
단순이라는 말에 좀 욱한건지 여동생은 다람쥐처럼 볼을 잔뜩 부풀린다.
이런. 말조심해야겠군.
"물론 단순하다곤 해도 추상적인 x나 y같은 변수를 다루니까 쉽지는 않지. 이런 데서 수학을 고통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네. TV같은 데서 사랑은 연립방정식같다는 말도 하잖아? 그렇게 연립방정식은 어려운 수학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지."
"아. 친구 중에서도 못 푸는 애가 있었던 거 같아."
"그럼 연립방정식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계산부터 해보자."
"간단한 계산이라니... 어차피 또 어려울 거잖아?"
"1+2는?"
여동생이 후에에...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낸다.
"3?"
당연하게도 바로 대답한다.
"정답!"
"......아까부터 신경쓰여서 묻는 건데, 그 에섹타!는 도대체 뭐야?"
"아아, 이건 가면 중 하나인 핀돌 캐리어스라는 캐릭터가 하는 대사인데, 의미는 정ㄷ..."
"역시 됐어."
"아 그래, 미안."
여동생에게 거부당하자 바로 사과한다. 그렇기에 차조(侘助)인 것이다. 1
"그러면,"
1+2=3
"이 수식에 별도의 해석을 줘보자."
"별도의 해석?"
"응. 여기서 1이라는 숫자를 x라는 변수로 바꾸자. 다시 말해,"
x=1
"가 되겠지. 이걸 좀 변형시켜보면,"
x-1=0
"을 얻겠지. 여기까진 이해했어?"
"응. 우변의 1을 좌변으로 이항했다는 거지?"
"응, 그렇지."
"뭐 이런 건 쉽지."
이런 건 자기도 할 수 있다는 말이라도 나올 것 같다.
"비슷하게 2 역시 y로 두자. 즉,"
y=2
"이제 변형하면,"
y-2=0
"...가 되겠지."
"응응."
"그리고 다시 새로운 변수 z를 생각하자. z는"
z=x+y
"라고 두자고."
"라고 두자고."
여동생이 내 흉내를 낸다. 좀 귀엽다.
"이 식도 변형하면,"
z-x-y=0
"를 얻게 되노라!"
거듭 고민을 한 끝에 말끝을 "-노라"로 바꾸었노라. 하지만 여동생은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을 뿐이었노라.
뭐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노라.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야겠노라.
"이렇게 변수 3개짜리 연립방정식을 얻었어."
x-1=0
y-2=0
x-z-y-=0
"문자가 좀 많네. 식도 3개나 있고."
여동생이 노트를 보며 앓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식 하나하나는 어렵지 않지?"
"응. 그럴 지도."
"그렇지만 연립방정식을 풀려고 보면 한꺼번에 많은 식이 보이니까 다들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말지."
"그렇구나."
"이제 이 연립방정식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어, 의미가 있어?"
여동생이 얼굴에 곤란함 그 자체를 띄고서 물어본다.
아무래도 수식에서 의미를 찾는 것 자체에 순수하게 당혹감을 느끼는 것 같다.
"있잖아, 우리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연립방정식을 세운 거야."
나는 노트에 있는 식을 따듯하게 감싸안으며 말한다.
"그 목적을 알아보기 위해 이 연립방정식을 z에 대해 풀어보자. 위에 있는 식을 모두 더하면 어떻게 되지?"
"어, 으음, 좌변은,"
(x-1)+(y-2)+(z-x-y)
= z-3
"가 되고... 우변은,"
0+0+0=0
"이니까 그대로 0?"
"그렇다면 무얼 얻지?"
"음, 그러면..."
z-3=0
"아. 따라서"
z=3
"가 되는 거지?"
여동생이 맞는 답을 이끌어냈다.
"풀긴 했는데... 그래서 우린 지금까지 뭘 한거야?"
"1+2=3이겠지?"
"아, x가 1이고 y가 2니까 z=x+y의 z를 구함으로써 1+2를 했다는 거야?"
"바로 그거야. 이 연립방정식의 의미는 1+2를 계산하겠다는 거야."
"....이거 뭐, 간단한 계산을 괜히 빙빙 돌려서 하는 거 아냐?"
여동생이 불평을 하고 있으니 슬슬 트릭을 밝혀야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숫자'였던 1과 2를 '다항식'인 x-1과 y-2에 대응시켰다는 거야. 다항식으로 치환한 이후에 z, 그러니까 x+y를 계산했지."
"응."
"네가 말한대로, 아까 한건 일부러 정수 계산을 어렵게 한 것일 뿐이니 사실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지."
"그래, 그렇다구."
"하지만 무리수의 덧셈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특히 피타고라수(대수적 수), 그러니까 √2나 √3같은 거."
"무리수의 덧셈?"
나는 연립방정식을 쓴 페이지 아랫부분에 이렇게 썼다.
x=√2
y=√3
"이번엔 √2랑 √3을 각각 x와 y로 두자. 이들 각각에 대응되는 다항식은 뭐지?"
"...대응되는 다항식이 뭐더라?"
"아, 아까 얘기했던 대로 생각해보자. 1과 2를 x와 y로 치환했을 땐 이런 대응관계가 있었지."
x=1 ⇆ x-1=0
y=2 ⇆ y-2=0
"이건 알겠지?
"아, 응. 식을 살짝 변형했지?"
"그랬지. 여기서 오른쪽 등식은 '다항식=0'꼴로 나타났지. √2랑 √3도 똑같이 '=0'꼴이 되는 다항식을 찾고 싶어."
x=√2 ⇆ ?=0
y=√3 ⇆ ?=0
"그렇구나."
x=√2 ⇆ x-√2=0
y=√3 ⇆ y-√3=0
"이거 맞지?"
여동생이 ?를 지우고 그 위에 다항식을 덧쓴다.
"아, 말한다는 걸 까먹었네. 지금 우리가 여기서 쓸 수 있는 건 유리수밖에 없어."
"유리수밖에?"
"유리수는 계산기로 계산할 수 있었지? 그러니 그걸 이용해서 무리수를 계산하려고 하는 거야. √2는 아직 무리수니까 쓸 수 없어."
"소수로 바꿔도?"
"소수라니?"
"그니까, √2=1.41421356이잖아? 이걸 쓰면 되는 거 아냐?"
"일 점 사일사이일삼....은 어디까지나 근사값이지 수학적으로 정확한 값이 아냐. 그러니까 가령, √2=1.414213562373095048801688724209......처럼 무한히 계속되잖아?"
"아 그런가."
"그리고 유리수 얘기할 때도 말했듯이, 무한히 계속되는 숫자는 컴퓨터로 계산할 수 없어."
여동생은 이해했다는 듯 응응거리며 고개를 몇번 끄덕인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애초에 √2가 뭐지?"
"으음, 제곱하면 2가 되는 수?"
"그렇다는 건?"
".....x 제곱 이퀄 2?"
x^2=2
"그렇지! 그러면 √3은?
"y의 제곱 이퀄 3!"
y^2=3
나는 아까 그린 표에 지금까지 얻은 결과를 적으며 말한다.
"요약하면,"
x=√2 ⇆ x^2-2=0
y=√3 ⇆ y^2-3=0
"가 되겠지. 이번엔 오른쪽 등식에 변수와 유리수 말고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 이런 다항식은 컴퓨터로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 그래서 컴퓨터한테는 √2 대신 x^2-2라는 다항식을 사용하게 하지."
"흐음."
여동생이 약간 헤매는 듯, 미간에 없던 주름을 잡는다.
나는 여동생의 상태를 보며 설명을 계속 한다.
"x^2-2같은 다항식은 √2의 최소다항식이라고 불러. 왜냐면 풀어서 √2가 나오는 가장 작은 다항식이기 때문이지."
"아아, 이차방정식 말이구나."
"비슷하게 √3의 최소다항식은 x^2-3이야. 그러면 이제 z=x+y, 즉 √2+√3의 최소다항식을 구해보자. 다시 말해,"
z=√2+√3 ⇆ ?=0
"이 표에서 ?에 들어갈 다항식을 찾아 보자.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는걸."
"이번에는 아까처럼 딱 하고 쉽게 나오진 않지. 여기서 다음 연립방정식을 생각해보자."
x^2-2=0
y^2-3=0
z-x-y=0
"아, 왠지 처음에 풀었던 거랑 비슷한 거같아!"
"그렇지. 이 연립방정식을 z에 대해 푸는 건 z로만 된 방정식을 찾는 거랑 같지. 그건 결국"
"z의 최소다항식을 구하는 것과 같다?"
잘 모르는 줄 알았더니, 여동생이 예상을 뛰어넘는 이해도를 보여준다.
놀랐다.
"자, 그럼 아까처럼 더해보자구!"
여동생은 이렇게 말하면서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멋대로 계산을 시작한다.
연필을 사각사각 놀리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계산을 하는 여자아이는 그 누구라도 매력적이다.
"어라? 안 되네?"
여동생이 식을 내려다 본다.
x^2-x+y^2-y+z=0
그러고 나서 으음, 끄응, 하고 고민하더니 머리에서 연기라도 날 것처럼 폭발을 일으키고 기브 업을 선언했다.
"이거 어떻게 푸는 거야?"
"궁금해?"
"궁금해!"
좋은 반응이다. 이렇다면 가르칠 보람이 있겠는걸.
"힌트를 주자면 으음... 그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며, 때로는 아이와도 같이 사랑스러우며, 때로는 아버지와 같이 든든하며, 때로는 어머니와 같이 포근함을 주시는 그것을 쓰면 풀 수 있어."
"......................"
"즉,"
여기선 정색하고 있는 여동생은 내버려두고,
오빠답게 간지나는 대사를 꺼내야겠지.
"그뢰브너 기저?"
여동생이 먼저 말했다만,
이건 오빠로서 귀여운 여동생에게 대사를 양보한 것이다.
이런 때 오빠로서의 자존심은 오로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뢰브너 기저를 쓰면 이 연립방정식을 풀 수 있으니까.
- 故に侘助. 블리치에 나오는 대사. 차조(侘助)에는 사과하듯 고개를 숙인다는 의미가 있다―역자 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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