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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와 아르키메데스』
"무슨 소리야? 실제로 있으니까 실수 아냐?"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듯 칸나가 물어본다.
실제로 있으니까 실수.
실재하니까 실수.
Real Number라고 부르는 그 수를 우리는 얼마나 리얼하게 다룰 수 있는가.
나는 속으로 그 말들을 되새긴 후 여동생의 질문에 답한다.
"그럼 실수가 구체적으로 뭔데?"
"구체적으로... 방금 전에 다뤘던 유리수도 실수고... 또 √2나 √3 같은 거?"
"그래. 또?"
"으음...... 앗! 원주율도 실수지?"
"그렇지. π도 실수지."
"뭐야, 꽤 많이 있잖아."
칸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여동생과 평범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렇게 제대로 대화하는 건 의외로 오랜만인지 모른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려 하는데, 여동생이 내게 질문을 했다.
"어째서 인류에겐 아직 이르다고 한 거야? 수학에서도 자주 쓰잖아? 원의 넓이라거나."
"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실수를 둘로 나눠볼까."
"두 종류로?"
나는 노트에 긴 세로줄을 하나 긋는다.
"모든 실수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 유리수와 무리수. 이건 알고 있지?"
"응. 중학교 때 배운 것 같아."
"무리수엔 아까 나온 √2, √3, π 같은 게 포함되어 있지."
"그렇지."
"그리고 무리수 역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
나는 노트에 긴 세로선을 하나 긋는다.
"또 나눈다고?"
"응. 여기서는 √2랑 √3이 같은 팀, π는 다른 팀이 돼."
"어, 둘이 뭐가 다른데?"
"한마디로 하자면 다항식으로 표현할 수 있냐 없느냐인데..."
여동생의 얼굴이 조금 흐려지기에 화제를 살짝 돌리기로 했다.
"잠깐 옛날 이야기를 할까."
"언제 이야기?"
"한 2500년 전쯤?"
"정말 옛날이네."
"먼 옛날 옛적, 고대 그리스에 피타고라스라는 수학자가 살고 있었어요."
왠지 어렸을 때 여동생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기억이 난다.
"피타고라스는 수학계의 카리스마적인 존재였어요. 피타고라스는 피타고라스 교단이라는 비밀결사단을 만들어 수많은 신도들을 거느리고 다녔어요."
"왠지 무서워..."
"피타고라스의 교리는 이랬어요. '모든 수는 유리수다'."
"유리수?"
"응. 피타고라스 교단에게 수의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좁았어. 신도들은 다들 이 교리를 의심하지 않고 따랐지.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영원히 계속되진 못했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너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들어본 적 있지?"
"응, 아마 중학교 때 배운 것 같아. 삼각형의 길이에 대한 거?"
노트 줄을 따라 직각삼각형 ABC를 그린다.
"정확히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정리지. 식으로 쓰면,"
a^2+b^2=c^2
"가 되겠지."
"대충 그런 거구나."
"여기서 a=b=1라 두면, 다시 말해 두 변의 길이가 1인 직각이등변삼각형을 생각하면 빗변의 길이는 어떻게 되지?"
"잠깐만... 직각이등변삼각형이라니, 수학에서 쓰는 말은 쓸데없이 길어서 알아듣기 어렵다구... 그래서, a=1이고 b=1이니까,"
1^2+1^2=c^2
"따라서,"
c^2=2
"맞지?"
"맞아. 그러면 c는 몇이지?"
"제곱해서 2가 되는 수...? 아, √2?"
"그렇지. 여기서 √2는 유리수가 아냐. 짖궂게도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피타고라스의 교리를 부정하고 만 거지!"
"불쌍해."
"더 불쌍한 건 그걸 발견한 어떤 신도지. 피타고라스는 무리수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신도를 배에서 떨어뜨려 익사시키라고 했어."
"뭐어?! 죽였다고!?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대강 이렇겠지."
피타고라스 : "만물은 수이니라 (유리수니라)"
피타고라충 : "피타고라스님wwwwwㄹㅇ개쩖wwww피타고라스정리ww킹타갓라스www(´^ω^`)"
어느 신도 : "피타고라스 정리로wwwww무리수 발견wwwww피적피wwwwwwwww"
피타고라충 "쟤 뭐임? 글쓴이를 산 채로 잡아라."
어느 신도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왠지 더 이해하기 어려운데? 피적피는 또 뭐야?"
".......하던 얘기 계속 할게."
"그래서 피적피가 뭔데?"
"어쨌든, 그들에게 √2가 무리수라는 건 비극의 시작이었어."
"으, 응."
간신히 칸나의 질문을 피하고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러면 이제 √2가 진짜 무리수인지 확인해볼까. 이건 중학교에서 가르쳤을 것 같은데, 기억나?"
"어, 아, 으음, 잘 떠오르지 않는데."
"귀류법으로 증명하지 않았어?"
"아, 기억이 날듯 안날듯... 잘 모르겠는걸. 헤헤."
여동생은 그렇게 말하고서 머리를 긁적인다.
머리를 긁적이는 그 모습이 앳되어 보인다.
"그럼 이제부터 간단히 복습해보자. 이제부터 나올 수의 2의 지수를 봐줄래?"
"이의지수?"
노트를 넘겨 여백에
2
라고 쓴다.
"여기 있는 2에는 2가 몇 개나 있을까요?"
"응? 뭔 소리야?"
"그런 소리."
"...........................1개?"
칸나도 내 동문서답에 익숙해졌는지 아무 불평 없이 답한다.
"그렇지, 정답."
"휴우."
이런 질문엔 답을 하는 게 좋다는 걸 이해한 모양이다.
"그럼, 6에는?
"으응, 그건............. 아, 2×3이니까 이것도 1개?"
"맞아. 그럼 6의 제곱, 그러니까 36에는?"
"으으으으음, 36은 2 곱하기 2 곱하기 3 곱하기 3이니까 2개?"
"정답!"
노트에 지금까지 한 계산 결과를 적어둔다.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러면 p를 정수라고 하면 p^2(p의 제곱)엔 2가 몇 개 있지?"
"우엥!?"
"정수를 제곱하면 거기엔 2가 몇 개 있지?"
".......알 수 없는 거 아냐? p가 정수라는 거 말고 조건이 없잖아?"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을까?"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칸나를 쳐다본다.
칸나는 살짝 놀랐지만, 노트 위의 숫자를 보고 무언가를 떠올린다.
"아, 짝수 개?"
여동생은 이상한 때 이해가 빠르다.
얘는 도저히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왜 그런데?"
"그게, 제곱이란 건 같은 걸 두 개 곱한다는 거잖아? 그러면 2의 갯수도 두 배로 느는 거 맞지? 아까 6에는 2가 하나였지만 36개는 2개였던 것처럼."
"정확해!"
".....그런데 그게 √2가 무리수인 거랑 무슨 상관이야?"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하려 했지만, 역시 너무 옛날티가 나는 것 같아 관둔다.
"여기서 또 다른 정수 q를 생각하자. 이번엔 0이 아니라고 하자고. 그럼 q^2에도 똑같이 2가 짝수 개 있겠지."
"응."
"그럼 이 수엔 2가 몇 개 있을까?"
2q^2
"으음, 이번엔 q^2에 2를 곱한 거지?"
"그렇지."
"그렇다면... q^2에는 2가 짝수 개 있고 2에는 2가 1개 있으니까, 더해서 짝수+1개?"
"그걸 뭐라고 하지?"
"응? 어어, 아, 홀수 개!"
"여기서 잠깐 정리해보자. p^2에는 2가 짝수 개 있고, 2q^2에는 2가 홀수 개 있어. 이게 의미하는 바는..."
"p^2과 2q^2는 다른 수라는 거?"
"정답입니다!"
칸나도 이런 추상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져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2랑 무슨 상관인데?"
"이걸 봐줄래?"
p^2 ≠ 2q^2
"아까 말한걸 식으로 쓰면 이렇게 되겠지."
"응."
"여기서 두 수를 q^2로 나눠도 여전히 다른 수겠지?"
"응, 그렇지."
"그리고 루트를 씌워도 여전히 다른 수지?"
√(p^2/q^2) ≠ √2
"아!"
"여기서 √2가 등장하지. 이 식은 √2가 좌변에 있는 수랑 다르다는 걸 의미해. 여기서 좌변은 무슨 수지?"
"으음,"
√(p^2/q^2) = √(p^2)/√(q^2)
"...이고, 제곱과 루트는 서로 상쇄되니까..."
√(p^2) = p,
√(q^2) = q,
√(p^2/q^2) = √(p^2)/√(q^2) = p/q
"...겠지!"
칸나는 자신이 구한 답에 확신이 생긴 것 같다.
"엄밀하게는 p,q가 음수일 땐 √(p^2) = -p, √(q^2) = -q지만, 뭐 여기선 별 문제 안 되니까 √(p^2/q^2) = p/q라고 해도 되겠지."
"흥, 음수 녀석들."
칸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음수들을 기분 나쁘다는 듯 째려본다.
"이걸로 준비는 모두 끝났어. 따라서 우리가 얻는 결론은,"
p/q ≠ √2
"가 되겠지. 다시 물어볼게. 좌변은 어떤 수지?"
"어떤 수냐니...... 분수?"
"여기서 p와 q는 특정한 수가 아니니까 임의로 정해도 되겠지. 그렇단 말은, p/q도?"
"임의의 분수?"
"그렇지. p와 q가 정수 범위에서 막 움직이면, p/q는 어떤 유리수라도 될 수 있겠지. 그 말인 즉,"
"√2는 어떤 유리수하고도 같지 않다?"
"정─답입니다!!!"
생각보다 여동생의 이해가 빨라서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2가 유리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어. 어때?"
나는 칸나를 보며 상태가 어떤지 파악한다.
"으응, 이야기를 오래 해서 그런가 완전히 녹차가 된 것 같아."
녹초겠지. 하지만 굳이 꼬집진 않았다.
"그치만 모순같은 게 안 나와서 이해하기 더 쉬웠던 거 같아."
"나중에 직접 한번 더 생각해보면 더 좋을거야. 수학은 자기 머리로 이해될 때까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니까."
"응, 알았어!"
"한 마디만 더 하자면,"
사족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입을 멈출 수 없었다.
내 나쁜 버릇이다.
"√3에 대해서도 3의 갯수를 세서 무리수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정수 m을 소인수분해 했을 때 거기에 홀수 지수를 가진 소수가 있다면 √m이 무리수라는 것도 알 수 있지. 다시 말해, m이 제곱수만 아니면 √m은 무리수야."
"??????"
정말 사족이었나보다. 하던 이야기나 하자.
"그럼 다음엔 π같은 무리수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 응!"
"피타고라스 이후 300년 뒤에, 그래도 2000년 전이지만, 역시 고대 그리스에 아르키메데스라는 천재 수학자가 있었어."
"아르키메데스?"
"응. 그는 정말로 수학의 천재였어. 지금까지도 세계 3대 수학자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사람이지."
"오호,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그의 업적 중 하나로 원주율의 발견이 있어."
"π를 발견한 사람이구나."
여동생이 역사 이야기만 꺼내면 더 흥미롭게 들어준다는 걸 알았다.
잠깐 일화를 꺼내볼까.
"아르키메데스는 천재였지만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었어. 어느 날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수학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아이디어를 떠올렸어. 그러자 '유레카! 유레카!' 거리며 옷도 안 입고 거리로 뛰쳐나갔다고 하지."
"그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변태잖아."
"어,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여동생이 한 말이 마치 내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 상처받았다.
아니, 아르키메데스는 변태가 아냐. 존잘이라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선,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최후는 정말 비극적이었어."
"최후라니, 죽는 거 말야?"
"응. 그 때 아르키메데스가 살던 곳으로 로마군이 쳐들어왔어. 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그런 건 관심없다는 듯 땅 위에 원을 그리며 숫자를 쓰고 있었지. 그 때, 로마 병사가 나타났어. 로마 병사는 그를 끌고 가려고 했지만 아르키메데스는 '수학하는 걸 방해하지 마라!'라며 거절했지. 거기에 화가 난 로마 병사는 그 자리에서 아르키메데스를 칼로 죽였어."
"......죽이다니.......너무해."
"아르키메데스는 죽기 직전까지 필사적으로 수학을 생각한 거야. 그에게 있어 수학은 인생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지... 그런 그의 위업 중 하나가 원주율 π의 발견이었어. π는 지금도 가장 중요한 수 중 하나야. 뭐, 현대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되겠지."
로마 병사 : "아아, 시라쿠사에 승전의 기운이 가득해... 너는 여기 시민이니?"
아르키메데스 : "그림을 밟지 말아주세요!"
로마 병사 : "그래도 난감하네. 나는 너를 데려가야만 해서..."
아르키메데스 : "그림을 밟지 말아주세요!"
로마 병사 : "맞아, 시체로 변환하면 옮기기 쉽겠구나!"
아르키메데스 : "그림을 밟...(푸슉)"
이번엔 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것 같다.
".........오빠?"
여동생이 부르르 떨고 있다. 그렇게 재밌었나?
"완전 엉망이잖아 이거! 이제 슬슬 아르키메데스가 멋진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라, 그, 그랬어?"
"그랬어!!"
이럴 수가. 생각지도 못한 데서 여동생의 기분을 망치고 말았다.
농담도 안 먹히는 녀석.
"하, 하, 하여튼. 지금까지 두 종류의 무리수를 확인해봤어. 피타고라스의 √2랑 아르키메데스의 π."
".......응."
여동생이 불쾌한 기색으로 대답한다.
"그러면 앞으로 편의상 √2 같은 수는 피타고라수, π 같은 수는 아르키메데수라고 하자."
"......그거 오빠 아이디어야?"
"어, 음, 그런데?"
"촌스러워."
"그러면 앞으로 편의상 √2 같은 수는 피타고라수, π 같은 수는 아르키메데수라고 하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든 걸까.
아까 현대식 이야기를 할 때부터인가...
비록 여동생이긴 하지만 여고생한테 촌스럽다는 말을 듣다니 정말로 자살하고 싶어진다.
실망에 빠져 입을 다물고 있으니 왜인지 칸나가 부드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나쁘진 않네. 피타고라수랑 아르키메데수란 이름, 좀 귀여운 것 같아."
"어, 정말? 그럼 아까 촌스럽다고 한 건..."
"촌스러운 건 맞는데 귀엽기도 한걸. 그니까 빨리 이야기 계속 해줘."
흘리지도 않은 눈물을 닦으며 애써 기분을 전환한다.
"크흠. 사실 수학에서 피타고라수는 '대수적 수', 아르키메데수는 '초월수'라고 불러."
"으으, 왠지 어려워."
"우리는 이제부터 피타고라수, 그니까 '대수적 수'를 계산하려고 해."
"그러니까 √2+√3같은 거 말이지?"
"응응."
"어떻게 계산하는데?"
칸나가 맞장구를 잘 쳐줘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건 말야, 칸나도 잘 아는 걸 쓸거야."
"내가 잘 아는 거?"
"응. 중2때 배웠을 걸."
"이제 그만 좀 놀려줘."
자, 재밌는 건 이제부터다.
마침내 그뢰브너 기저의 코앞까지 왔으니.
"그건 바로..."
"으응..."
나는 칸나의 시선을 확 끌고선, 입을 연다.
"연립방정식이야."
'번역 / 소설 > 최근 여동생이 그뢰브너 기저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고문헌 (1) | 2017.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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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뢰브너 기저와 여동생 제5화 (1) | 2017.09.20 |
그뢰브너 기저와 여동생 제4화 (0) | 2017.09.17 |
그뢰브너 기저와 여동생 제2화 (0) | 2017.09.14 |
그뢰브너 기저와 여동생 제1화 (0) | 2017.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