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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널목이 소란스러운 경적을 울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방해한다.

 여느 평일, 나는 대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아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비닐 우산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비가 스니커즈를 밑바닥까지 적시고 있었다.


 비도 제아무리 많이 와 봐야 강우량은 가산이니까 이 비도 언젠가는 그치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내린대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비는 반드시 그친다는 주장도 경험법칙일 뿐이니, 내린 비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리고 또 올라가며 순환을 되풀이하면 영원히 그치지 않는 비도 가능하지 않나?


 오른손이 피로해져 우산을 왼손으로 바꾸어 쥐면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축을 가득 실은 전차가 눈 앞을 휙 지난다.


 아니, 이렇게 이른 저녁에 돌아가는 시점에서 사축은 아니려나.

 아니, 일이 없는 내게 일하는 사람은 모두 염연한 사축이다.


 하아.

 대학원에 가면 앞으로 뭘 해야 할까.

 석사 학위를 받고 취업할까, 아니면 바로 박사 과정을 밟고 학교에 남을까.

 가능하면 박사 과정을 하고 싶지만 그런다 해도 테뉴어를 딴다는 보장은 있는 걸까. 박사 과정을 하고 취업하는 길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거나 어떻거나 일을 하고 월급을 받으며 밥 걱정 안 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백만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는데. 아아, 역시 세상은 돈, 돈이다. 돈만 있으면 돈이 없을 때 하는 걱정도 없어질 텐데. 게다가 써도 써도 돈이 남을 테니 어쩌면 비를 그치는 기계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계를 파는 곳은 없겠지만.


 결국 비가 이 모든 것의 원흉이다.

 비만 그치면 이 우울한 기분도 풀리고 일본의 포스트닥터 문제도 해결되는 건데.

 

 차가운 비가 이젠 오른쪽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 신발 밑바닥이 젖은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축축한 불쾌감이 너무나 기분 좋을 지경이다.

 그렇다. 뭐 하나 되어 먹는 일이 없다.


 차단기가 올라가자 나는 선로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옅은 핑크색 우산을 쓰고 어깨에 책가방을 맨 여동생이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전철이 지나치며 일으킨 바람에 교복 치마 끝이 살랑 흔들린다.

 방금 뛰어왔나 본지 숨이 가쁘고 뺨이 발그레하다.


 "오빠도 이제 집 가?"

 "아, 으응."

 "집 가다가 만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오, 정말이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데 다시 건널목이 소란스런 소리를 내기에 나는 여동생과 함께 서둘러 건널목을 건넜다.

 건널목을 지나자 바로 사람 가득한 상점가가 나온다.

 도쿄 변두리에 간신히 위치한 이 상점가는 시골이라고 하기엔 도시 같고, 도시라고 하기엔 도시라는 단어가 너무 세련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이라 할 수 있다.

 번화가 같은 큰 빌딩은 없지만 슈퍼마켓이나 식당 등이 걸어가기 충분히 가까이 있는 데다, 도심지까지 전철로 10분이면 갈 수 있으니 사는 데 큰 불편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상점가는 쇼핑 중인 아줌마와 하교 중인 중학생의 우산으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는 바늘에 실을 꿰는 마냥 우산과 우산 틈새를 간신히 빠져나왔다.


 "후우... 길 너무 막혀..."


 여동생이 두 손으로 우산을 꼭 쥐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인다.

 상점가를 겨우 벗어난 우리는 좁은 뒷골목으로 걸어갔다.


 떠들썩한 곳에서 바로 조용한 곳으로 간 탓인지 적막함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가 신경쓰인다.

 우리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지만 아무 화제도 찾지 못했다.

 비와 우리 둘만의 발소리만이 뒷골목에 울려펴진다.

 6살 터울 남매란 친구라기보다는 남같은 사이인지라 의외로 대화하기가 어렵다.


 "저... 잠깐 쉬다 가는 거 어때?"


 칸나가 먼저 침묵을 깨고 온다.

 여동생의 눈이 향한 쪽을 바라보니 최근 개점한 듯한 다소 세련된 카페가 있었다.

 어설픈 OPEN 글자와 오늘의 메뉴가 적힌 간판이 가게 처마 밑으로 드러나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중년 남성이 우리를 가장 안쪽 테이블로 안내했다.

 가게가 작은 걸 보니 아마 점장이 웨이터도 하는 거겠지.

 날씨 때문인지 우리 말고 손님은 없었다.

 아늑한 재즈가 기분 좋게 들린다.


 "여기, 봄 한정 딸기 타르트 홍차 세트 주세요."


 여동생은 메뉴판을 흘끗 보더니 웨이터가 물을 놓자마자 주문했다.


 "오빠는 뭘로 할거야?"


 여동생이 빨리 고르라고 졸라대기에 나는 급히 수제 느낌이 나는 메뉴판을 편다.

 봄은커녕 장마철이 시작되었는데 봄 한정 메뉴가 있다.

 그러면 여름 한정 메뉴인 『빙과』는 없을까 하며 '오레키 상! 와타시, 키니나리마스!'한 느낌을 받았지만 역시나 없는 모양이다.


 나는 무난하게 오늘의 커피를 골랐다.

 가게 주인은 주문을 확인하더니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10분 정도 지나고 타르트 세트와 커피가 나왔다.

 컵과 그릇의 디자인에서부터 여기는 커피 전문점이라고 말하는 듯한 가게 주인의 고집이 느껴진다.


 "으음~ 역시 맛있어!"


 여동생은 뺨이 떨어질 것처럼 맹렬히 타르트를 입에 넣고선 기뻐하고 있었다.

 칸나가 카페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이 타르트를 노렸나 보다.

 나는 지갑에 돈이 얼마나 남았나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돈을 낼 각오를 다진다.


 "요즘 학교 생활은 어때?"


 나는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여동생에게 물어보았다.

 블루 마운틴을 썼나 본지 깊은 원두 향이 코 안으로 스며든다.


 "으음, 뭐 그럭저럭 하고 있어."


 그럭저럭 하고 있다면 다행이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엔 정말 그럭저럭 잘 지냈었지.


 "......뭐냐 그, 혹시 네 주위에 이상하거나 힘들게 하는 건 없니?"

 "이상하다니? 무슨 소리야?"

 "아, 아냐. 별 일 없으면 됐고."


 도라이 켄(導来 圏).

 난죠가 알려준, 여동생을 노리고 있다던 녀석의 이름이다.

 그 수학 배틀이 있은 뒤 몇 주 동안 여동생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나 계속 확인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어 보였다.

 난죠 말로는 도라이 켄이 법의 선을 넘는 짓을 하는 녀석은 아니니, 칸나에게 손을 댄다면 아마 여동생을 건 수학 배틀을 신청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수학 배틀은 동수 회원끼리만 할 수 있으니 난죠는 수학 배틀을 당할 위험성이 높은 오빠, 즉 내 회원권을 수학 배틀로 미리 없애버렸던 거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수학 배틀을 신청할 수도 응수할 수도 없다.

 여동생의 안전이 걸린 싸움은 더 일으키고 싶지도 않고.


 "아, 그래도 좀 신경쓰이는 건 있어."


 여동생이 홍차에 떠 있던 레몬을 베어먹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덕분에 블루 마운틴을 뿜고 말았다.


 "저, 정말이야!? 이상한 녀석이라도 얽힌 거야!? 아니면 체육복이라도 도둑맞은 거야!?"

 ".........아니, 지리 이야긴데?"

 "지리?"
 "응, 지리."


 여동생이 가방에서 지리 부도를 꺼낸다.


 "2학년부터 지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열대우림기후니 환태평양 조산대니 어려운 단어만 나와서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뭐야, 겨우 그거였냐......"

 "겨우가 아냐! 센터 시험 때 칠 과목이라구!"

 "그거 참 힘들겠네요, 힘들겠어."

 ".......뭐, 아무리 오빠라도 문과 과목은 힘들겠지."


 여동생의 그 말에 슬며시 화가 났다.

 이래 봬도 난 5년 전 센터 시험에서 지리를 응시했다고.

 스리랑카의 수도가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인 것도 기억하고 있고 내 트위터 팔로워는 바티칸 시국 인구보다도 많다고.


 "어디, 잠깐 보여줘 봐."


 그러고선 여동생에게서 지리 부도를 빼앗는다.

 .........흠.

 훗, 역시 그렇군.


 "공부 열심히 해라!"


 난 그렇게 말하고 여동생에게 지리 부도를 돌려줬다.


 "에엣!? 하는 말이 겨우 그거야!?"
 "네. 그렇습니다만?"

 "조언은 안 해주는 거야?"
 "어, 그래서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줬잖아?"

 "......그건.......조언이 아니라 그냥 응원이잖아."


 애시당초 이과인 나한테 지리를 물어보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수학책에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같은 말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친구가 없는 나한테 바티칸 시국 인구보다도 많은 팔로워가 있을 리도 없잖아.

 정말이지, 못 말리는 여동생이라니까.


 "역시 오빠한테 물어보는 게 아녔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색하고 나를 바라보는 여동생.

 쪽팔리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이대로는 오빠로서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으음, 어디 좋은 방법 없을까.

 지도와 수학......


 "아, 그렇지."

 이거면 좋겠다 싶은 게 떠올랐다.

 앞접시에 올려둔 커피잔이 짤랑 하고 작게 울린다.


 "온 세상을 네 색깔로 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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