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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이거 4색이 아니라 일반적인 n색에 대해서도 되나?"


 나는 Case 2를 골랐다.

 바로 n으로 일반화하려는 것이 수학도의 본능이다.


 "물론. n색으로 지도를 구분할 수 있는지 여부도 그뢰브너 기저로 판정할 수 있어."

 "오오─."

 "그럼. 식을 세워보자."


 난죠는 그렇게 말하더니 펜과 레포트 용지를 꺼낸다.

 그러고서 레포트 용지 중앙에 긴 세로선을 그어 종이를 반으로 나눈다.


 "우선. 4색문제를 다룰 때 세운 식은 x^4-1이었지."


 x^4-1=0


 "여기서. x는 1,-1,i,-i 네 값 중 하나였, 어. 물론 복소수 체 위에서."

 "그래서 각 값에 색 네 개를 다 대응시킬 수 있었지."

 "정답. 그러면 n색인 경우에는 어떤 다항식을 줘야 n개의 색을 대응시킬 수 있을, 까?"

 "으음...... x^n-1인가?"
 "의문. 왜?"
 "끄응...... x^n-1은 근 n개를 가지니까."

 "오답. 정확한 답은 n개의 서로 다른 근을 가지니까, 야."

 "응? 뭐가 다른데?"


 생각없이 질문을 내뱉고 나서 살짝 후회했다.

 난죠가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문. x^4-1의 근을 네 색깔과 잘 대응시킬 수 있던 건 x^4-1가 네 개의 서로 다른 근을 가졌기 때문이잖아. 만약 x^4-1가 중근을 가진다면 x^4-1=0을 만족하는 숫자는 4개보다 적어지겠지. 그러면 색깔 네 개에 대응시키기 어려울테고. 비슷한 이유로 n색일 때도 n개의 서로 다른 근을 가져야지."

 "그, 그러네......"


 아무리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해도 난죠의 날카로운 면은 여전하다.

 막말로 표현하자면, 툭하면 끼어든다.


 "문제. 그러면 x^n-1의 복소근은 n개의 근을 갖는다는 걸 증명해 보, 랑께."

 "어, 아, 으음......."

 좋지 않다. 아니, 내게 문제를 출제한 것도 좋지 않지만 그보다도 말끝에 "랑께"가 붙었다. 말끝이 변하다니 위험하다.

 난조에게 이상한 공격 스위치라도 들어간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으음 뭐랄까, x^n-1의 근이라는 건 1의 n제곱근이잖아. ζ=e^{2πi/n}는 그 중 하나고, 1, ζ, ζ^2, ζ^3, ... , ζ^{n-1}은 모두 x^n-1=0을 만족하지. 그리고 ζ는 n승해서 처음으로 1이 되니까 이들 수는 모두 다른 근이다, 따라서 x^n-1은 n개의 서로 다른 근을 가진다...... 이러면...... 맞나?"

 "정답."
 "휴우."

 "그럼. 이제부터 다른 방법으로 증명해보지."
 "엣."


 그만 옆에 있던 커피를 엎지를 뻔 했다.

 난죠는 그 이유를 다음처럼 설명했다.


 "그거. 지금 쓴 방법은 복소수의 성질을 쓴 해석적 증명, 이야. 그 방법 말고 대수적으로, 유한체에도 먹힐 만한 증명을 하고 싶어, 즈라."
 "무슨 소리야?"

 "미분. x^n-1을 미분해보자."
 "자, 잠, 잠깐만. 방금 대수적으로 증명을 하고 싶다면서. 미분이라니 해석학이 철철 넘쳐 흐르잖아."

 "우문. 미분이긴 해도 대수적인 미분이, 옵니다."


 난죠가 하는 말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미분!!! on ICE스러운 느낌으로 미분이 얼음 위를 여기저기 미끄러지는 영상이 흘러간다.

 난죠는 그런 내게 질려서 다시 한번 한숨을 크게 쉬더니 말을 꺼낸다.


 "질색. 대수 수업 때도 했잖아. 형식적 미분 말이, 야."

 "형식적...... 아!"

 "그래. 다항식의 각 항에서 지수를 1씩 줄이고 그 지수를 계수에 곱하는 그거 말야. 그걸 형식적 미분이라, 칸다."

 "으음, 그러면 x^3을 미분하면 3x^2이 되겠네."

 "정확. 해석학에서 미분은 극한으로 정의하지만, 형식적 미분은 다항식에 대해서 정의돼. 하지만 유리계수 다항식에 대해서 두 미분은 완전히 똑같, 아."

 아아. 이제 생각해보니 체론 수업 때 배웠던 것도 같다.


 "그럼. 유리수 체에서 x^n-1을 미분하면?"
 "그건...... x^n은 nx^{n-1}이고 -1은 사라지니까 nx^{n-1}이지."

 "정답. 여기서 n이 1 이상이면 x^n-1과 nx^{n-1}의 최대공약수는 1이므로, 따라서 x^n-1은 중근을 가지지 않는다. 증명 끝."

 "어!? 끝!?"
 "Yes. 질문 있어?"

 "앗, 엇, 어어, 어째서 x^n-1과 nx^{n-1}의 최대공약수가 1이면 x^n-1에 중근이 없었더라?"

 "황당. 다항식 f(x)를 f(x)=f_1^{e_1} f_2^{e_2}...f_d^{e_d}로 인수분해해봐. 여기서 f_1, ... , f_d는 쌍마다 서로소인 기약다항식이고, e_1, ... , e_d는 그 지수, 야."

 "기약다항식으로 소인수분해하란 말이지."

 "이제. f(x)를 x로 미분해 봐, 요─소로─."

 

 요─소로─!

 안타깝게도 나는 선샤인에선 요하네의 리틀 데몬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요─소로─라고 답해줄 수 없다.

 요─소로─보다는 요─시코─니까.

 뭐 그건 됐고, f(x)를 미분해봤다.


 f'(x)=e_1 f_1^{e_1-1} f_2^{e_2} ...f_d^{e_d} + e_2 f_1^{e_1} f_2^{e_2-1} ...f_d^{e_d} + ... + e_d f_1^{e_1} f_2^{e_2} ...f_d^{e_d-1}


 "으음. 곱의 미분을 쓰면, 곱에서 (f_i^e_i) 하나씩 미분한 걸 모두 합한 게 되지. 그러니까 f_i^{e_i}에서 지수를 1 줄이고 e_i를 계수에 곱한 녀석 e_i f_1^{e_1}...f_i^{e_i-1}...f_d^{e_d}의 합이 f의 미분이 돼."

 "정답. 그러면 그 식을 예쁘게 정리하, 면?"

 "흐음, f_1^{e_1-1}...f_d^{e_d-1}로 묶을 수 있으니까,"


 f’(x)=e_1 f_1^{e_1-1} f_2^{e_2} ...f_d^{e_d} + e_2 f_1^{e_1} f_2^{e_2-1} ...f_d^{e_d} + ... + e_d f_1^{e_1} f_2^{e_2} ...f_d^{e_d-1}

  =f_1^{e_1-1}...f_d^{e_d-1} (e_1 f_2...f_d + e_2 f_1 f_3 ... f_d + ... + e_d f_1 f_2 ... f_{d-1})


 "뭐 이런 식으로 쓸 수 있겠네."

 "그럼. f와 f'의 최대공약수 gcd는 몇, 이에여?"

 "아까 묶었던 f'의 식을 생각해보면 f_1^{e_1-1}...f_d^{e_d-1}이겠지."

 "따라서. f와 f'의 최대공약수는 f의 소인수에서 지수가 1씩 줄어든 다항식이야. 그러니까 f가 square-free, 즉 e_1=...=e_d=1일 때 f와 f'의 최대공약수는 f_1^{e_1-1}...f_d^{e_d-1}=f_1^0...f_d^0=1이 되지."
 "그렇군. 그럼 역으로 gcd가 1일땐 f가 square-free, 즉 f가 중근을 갖지 않겠네."

 "요약. 지금까지 나온 논의를 요약하면, 미분과 최대공약수를 조사하면 중근을 갖는 지 판정할 수 있어. 이는 유리수 뿐 아니라 유한체 위에서도 쓸 수 있는 방법이지, 큐피콩."


 큐피콩이 뭔진 모르겠지만 유한체랑 아무 상관 없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난죠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투라는 것도 알겠다.


 "결론. 유리수 체 위에서 x^n-1과 nx^{n-1}의 gcd는 1이야. 따라서 n색으로 지도를 구분할 수 있는 지 여부는, 다항식 x^n-1을 이용해서 4색문제와 비슷한 방법으로 판정할 수 있어. 문제는 유한체에서도 x^n-1을 쓸 수 있냐는 거, 지."

 "응? 못 쓰는 경우라도 있는 거야?"
 "제시. Characteristic 2인 체에서 4색문제를 생각, 하긔. 여기서 x^4-1는 서로 다른 네 근을 가질까?"
 "......아! 못 가지나!"
 "요구. 그, 이유는?"

 "Characteristic 2인 경우 짝수는 모두 0이 되니까 (x^4-1)=(x-1)^4가 되어서 그래. 이러면 x^4-1은 1 말고는 근을 가지지 못하니까."

 "정답. 따라서 유한체에서는 x^n-1이 항상 n개의 서로 다른 근을 가진다고 단정할 수 없어. 그럼 역으로, 어떤 경우에 x^n-1이 서로 다른 근을 가질까."
 "......혹시 characterisic p일 때 p가 n을 나누지 않으면 되나?"

 "예리. 아까 썼던 미분이랑 gcd를 이용해서 증명해 봐, 갸오."


 좋았어. 해 볼까.

 나는 펜을 들었다.

 일단은 아까처럼 다항식을


 f(x)=f_1^{e_1} f_2^{e_2}...f_d^{e_d}


 라 쓰자. 이걸 미분하면,


 f’(x)=e_1 f_1^{e_1-1} f_2^{e_2} ...f_d^{e_d} + e_2 f_1^{e_1} f_2^{e_2-1} ...f_d^{e_d} + ... + e_d f_1^{e_1} f_2^{e_2} ...f_d^{e_d-1}


 이 된다. 문제는 유리수 때와 달리 유한체 F_p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한체 F_p에선 p의 배수는 모두 0이 된다.

 만일 지수 e_1, ... , e_n중 p의 배수가 있다면, 예컨대 e_i가 p의 배수라면 e_i=0이므로


 e_i f_1^{e_1}... f_2^{e_i} ...f_d^{e_d} = 0


 이 되고 만다.

 그러면 계산하기 힘들어진다.

 아, 그렇지. 그런 e_i는 따로 묶어서 생각하면 되겠다.


 e_i=0 mod p인 지수 e_i를 갖는 f_i^e_i만 모아서 h로 두자.

 첨수를 다시 매기면 f는


 f=h*f_1^{e_1}... f_2^{e_i} ...f_d^{e_k}


 가 된다.

 이 상태로 f를 미분하면, h의 미분은 0이 된다는 점만 빼면 유리수일 때랑 똑같으니까,


 f’(x)=h*(e_1 f_1^{e_1-1} f_2^{e_2} ...f_d^{e_d} + e_2 f_1^{e_1} f_2^{e_2-1} ...f_d^{e_d} + ... + e_k f_1^{e_1} f_2^{e_2} ...f_d^{e_k-1})


 이 된다. 따라서 f=h*f_1^{e_1}... f_2^{e_i} ...f_d^{e_k} 이므로 f와 f'의 최대공약수는,


 gcd(f,f’)=h*f_1^{e_1-1}...f_k^{e_k-1}


 이다. 만일 f가 square-free(e_i가 모두 1)일 때, e_i=0이므로


 gcd(f,f’)=h*f_1^{e_1-1}...f_k^{e_k-1}=h


 이 된다. 염병 h가 문제잖아.

 h 녀석 미분하면 멋대로 0이나 되고 말이야. 용서할 수 없어.


 ......아니 잠깐만.

 h는 미분하면 0이니까 지수는 p의 배수일 거 아냐?

 예컨대 x^p를 미분하면 p x^{p-1}=0이다.

 그렇군. f는 처음부터 square-free였으니까 애당초 h는 1이었던 거다.


 그러므로,


 gcd(f,f’)=h*f_1^{e_1-1}...f_k^{e_k-1}=h=1


 를 얻는다! 역으로 gcd(f,f')=1이면 f는 square-free가 되니까 이로써 유리수일 때랑 똑같이 다음 명제가 성립함을 보였다.


 deg(f)=n일 때,


 f가 서로 다른 n개의 근을 가진다 (중근을 갖지 않는다)      ⇔ gcd(f,f')=1


 "지금까지의 논의에 의해, 소수 p가 n을 나누지 않으면 x^n-1의 미분은 nx^{n-1}≠0이므로 최대공약수는 1이야. 따라서 방금 보인 명제에 의해 x^n-1은 F_p에서도 서로 다른 근을 가져. 그러므로 n색 문제는 n을 나누지 않는 F_p 위의 그뢰브너 기저로 판정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나는 난죠의 반응을 살핀다.

 이 문제가 정답이면 상금 천만원이 눈앞에!

 난죠는 손바닥 위에 각설탕 탑을 쌓고 가만히 있었다.

 Final Answer...

 나는 마음 속으로 그런 말을 하고 난죠가 움직이기를 꾹 기다린다.


 "답변. 다소 거친 논증이 있는데, 풀이의 방향은 맞, 아. 다만 그 서로 다른 n개의 근은 유리수일 땐 복소수 위에서, 유한체일 땐 그 대수적 폐포 위에서 생겨. 유리수체나 유한체같은 기초적인 체는 완전체(perfect field)니까 square-free한 다항식이 그 대수적 폐포에서도 square-free가 돼."


 완전체라니까 모 만화의 프리○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일단은 합격점을 받은 것 같다.

 게다가 이상한 말투를 말끝에 붙이지 않은 걸 보아하니 내 답안에 아무래도 조금은 만족한 것 같다.

 좋았어! 그럼 도라이 켄 대책 수립에 들어가자, 난죠야! 도도리아야!


 "흠냐."

 "..................에?"


 나는 굉장히 꺼림직한 느낌을 받아 조심스레 눈 앞의 난죠를 확인했다.


 자고 있다.

 그것도 색색 숨소리까지 내며 곤히 잠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F_p 위의 gcd(f,f') 이야기를 하던 때부터 내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지쳐서 졸고 있던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난죠에게 계산이라도 시킬 걸 그랬네.


 "으응...흠냐......pro-finite group...... totally disconnected compact Hausdorff topological group......흠냐아......"


 도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거야.

 아니 그리고 왜 꿈에서 수학을 하는 거야.

 라마누잔이냐.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Case 1을 선택할 걸 그랬어.

 그랬으면 아마 그뢰브너 기저를 직접 계산했을 테니 난죠가 잠들 일도 없었을 텐데.


 물 안에 들어있던 얼음이 녹으며 쩍 갈라지는 소리를 낸다.

 이리하여 끝없이 잠든 난죠와 함께 길고 긴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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