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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 타르탈리아 (獮問答)』 



 "머언 옛날 옛적, 16세기 경 이탈리아에 타르탈리아라는 수학자가 살고 있었어요. 타르탈리아는 1535년 초, 안토니아 마리아 피오레라는 사람에게 공개 설전 신청을 받았어요."

 "고옹개 설저언? (가성)"

 "대략 설명하자면, 공개 설전이란 서로의 명예와 부를 걸고 상대방에게 수학 문제를 내며 누가 더 수학을 잘하나 겨루는 대결이에요. 수학 시합이라고도 해요. 타르탈리아와 피오레가 치뤘던 수학 설전은, 삼차방정식 문제를 서로 30개씩 주고 30일 뒤에 더 많이 푼 사람이 이기는 형식이었답니다."


 "삼십문제?? 삼십일이나!!?? (가성)"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독자적으로 발견해 알고 있던 타르탈리아는 피오레의 문제를 보기 좋게 모두 풀어 제출했어요. 한편 피오레는 먼저 설전을 건 주제에 문제를 거의 풀지도 못하고 참패하고 말았답니다. 그 결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타르탈리아는 빛나는 명성을 손에 쥐게 되었어요. 참고로, 패배한 피오르의 뒷이야기는 알려져 있지 않답니다."


 "타르탈리아 대박!! 완전 쩔어!!!! (가성)"


 "......하지만 그랬던 타르탈리아에게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에─?? 뭔데 뭔데──?? (가성)"


 "타르탈리아가 발견했던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카르다노라는 사람이 멋대로 약속을 어기고 세상에 알리고 말았던 거에요. 비밀을 꼭 지키겠다는 조건으로 카르다노에게만 특별히 알려준 건데."


 "카르다노 나빴어!! 저질!! (가성)"


 "타르탈리아는 분노했어요. 자신이 힘들여 발견한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자기가 쓴 책으로 세상에 알리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도용당해 버렸으니깐요 (웃음). 타르탈리아는 실추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 카르다노에게 수학 설전을 신청했어요."


 "타르탈리아 이겨라!! 이겨라!! (가성)"

 "후후후. 정의는 승리해야 하는 법. 무엇보다 이대로는 타르탈리아가 불쌍하죠."


 "응!!! (가성)"


 "과연 시합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시합 결과가 어땠는지 알려진 건 없어요. 여러 설만 분분하답니다."


 "에─!!! 알려줘─!! 알려달라고─!!! (가성)"


 "자, 여러분 진정하세요!! 정의는 반드시 이기는 법이니까, 저희는 타르탈리아가 승리했다고 믿자구요! 진실보다 믿는 마음이 더 중요하니깐요!! 됐죠!?"

 "네에─!!!! (가성)"


 "............뭐, 오늘날 삼차방정식의 해법은 '카르다노의 공식'으로 불리긴 하지만요."


 그렇게 뵤도인 호다이의 일인극이 끝났다.


 "오─케이☆☆ 따라서〜 이제부터 너희 둘은〜 선문답 타르탈리아 를 하게 될 거야〜☆☆(*≧∀≦*)"


 갑자기 방금과는 다른 적막함이 온 분위기를 휩싼다.

 그럴 만도 하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미쳤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이 소녀가 이 곳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규칙은 간단해〜☆☆ 이제부터 30일간 도라이 쨩과 혼죠 쨩은〜 상대방에게 수학 문제를 내면 돼〜. 그리고〜 먼저 답을 못하게 된 쪽이 패배〜☆☆"


 뵤도인 호다이는 솜씨 좋게 다리로 테이블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럼, 질문 있어〜☆☆??"

 호다이는 일을 막 마친 직장인처럼 피곤해진 말투로 물었다.

 팔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새끼손가락으로 귀라도 쑤시고 있었을 것처럼.


 아니 아니 아니.

 하고픈 질문이야 겁나 많다.

 처음부터 규칙 설명을 한 마디로 끝낼 거였으면 아까 일인극은 필요없던 거 아니야?

 이래저래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니냐고.


 "하. 수학 문제는 아무거나 내도 되냐."


 그런 말을 꺼내려던 차, 도라이 켄이 반쯤 꼬여가지고는 묻는다.

 역시 호다이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응! 도라이 켄 쨩! 질문할 때는 손을 들어달라구〜☆☆ 하지만〜 누나는 착한 사람이니까〜 특별히 답해줄게〜☆☆ 수학 문제는〜 출제자가 답할 수 있는 문제만〜 낼 수 있어〜〜"


 호다이는 도라이가 낄 틈도 없이 말했다.


 "예를 들자면〜〜 '리만 가설을 증명하시오' 같은 문제는 출제자도 풀 수 없으니까 내면 안 돼〜〜. 뭐 풀 수 있음 상관없지만〜〜 여기 그게 가능한 녀석은 없잖아〜☆☆ (쓴웃음)"


 그렇군.

 터무니없는 문제는 내지 말라는 거군.


 "크흐. 그럼 답하는 측에게 제한시간은 주어지냐."


 또 역시나 도라이가 질문한다.


 "정말〜☆ 손을 들으라니깐〜〜☆☆ 으ー음〜 작전 타임이랑 답변 타임은〜 각각〜 세 시간이야〜☆☆ 수학 배틀 관리 위원회가 정한 시간에〜 출제자일 때는 문제를〜 하나 만들고〜 다 만들었으면〜 그 때부터〜 답변 타임 시작이야〜☆☆"


 한 문제에 세 시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도 한 문제에 1시간 내지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걸 감안하면 정말 긴 시간이다.

 그러면 나도 신경쓰이는 게 생긴다.


 "그 뭐냐... 호다이, 그러면 승리 조건은 어떻게 되는 거야?"

 "정말─ 혼죠 쨩도 손을 들으라구〜☆☆ 아까 말한 것처럼 선공과 후공을 정해서〜 서로 한 문제씩 내고〜 답을 하지 못한 쪽이 바로 패배해〜☆ 예를 들면〜 도라이 쨩의 출제로 시작해서〜 첫 문제부터 혼죠 쨩이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 시점에서 혼죠 쨩이 패배하는 거야〜☆☆ 아, 그리고〜 30일이라는 건〜 시간 상한을 정해놓았을 뿐이지 큰 뜻은 없어〜☆☆ (새우튀김)←(의미없음)"


 그러니까 서로 문제를 내는 퀴즈 배틀같은 거군.

 하지만 듣자하니 선공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 같다.


 "그럼, 선공 후공 여부는 어떻게 정해?"
 "좋은 질문이야〜〜☆☆ 선공은 동전던지기로 정해〜〜☆☆ 유리한 선공 포지션이 누구에게 들어오는지는〜 『운』에 걸린 셈이지〜〜(신만 알고 있음)"


 아무래도 돌줍기 게임 때처럼 운명은 동전에게 걸린 모양이다.


 "또 질문 있어〜〜?? 그럼 규칙을 요약해줄게〜〜☆☆"


/********************************************

*************선문답**************************

*********************************************

***규칙**************************************

* 1. 수학 문제를 번갈아가며 상대에게 하나씩 낸다.

* 2. 문제 준비 시간은 각 3시간.

* 3. 문제 답변 시간도 각 3시간.

* 4. 출제자는 자신이 답할 수 없는 문제를 내면 안 된다.

* 5. 답변자는 답을 할 수 없는 시점에서 패배.

* 6. 5의 경우 출제자가 승리한다.

* 7. 선공은 동전으로 결정.

* 8. 30일이 경과하면 배틀을 종료한다.

*********************************************/


 "그럼 운명의 동전을 던질게〜☆☆ 이제 울고불고 자시고 이걸로 결정되는 거야〜〜☆☆"


 이리하여 주사위, 아니 동전은 던져졌다.

 뵤도인 호다이의 입 안에서 동전이 튀어나와 허공을 획 돌며 바닥에 떨어지니 호다이가 발로 그것을 짓밟는다.

 앞면이면, 내 선공.

 뒷면이면, 도라이 켄의 선공이다.

 결과는...


 "으으응!!☆☆ 앞면이 나왔기 때문에 선공은 혼죠 케이스케 쨩이야〜(축하해ー(๑╹ω╹๑ ) )"


 예스. 좋았어.

 하기야 내가 후공을 받을 리가 없지.

 납치에 감금에 권력남용 등등, 부조리의 극치에 달한 도라이 켄에게 승리의 여신이 내릴 리가 없잖은가.


 "그럼, 지금부터 혼죠 쨩의 선공으로 수학배틀 선문답 타르탈리아  시작〜〜☆☆( ^ω^ )"


 그렇게 나와 도라이 켄의 수학 배틀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지금 대학 교실 하나쯤 크기 방에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내가 앉아 있다.

 내 건너편 벽 너머엔 도라이 켄과 뵤도인 호다이가 내 출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칸나는 도라이 켄이 있는 편에서 쪼그려 앉아 있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할 수는 없으리라.

 기다려 줘. 오빠가 금방 구하러 갈게.


 이 세미나 하우스 교실은 현재 수학 배틀 관리 위원회가 문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수학 배틀을 방해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일까.

 군죠와 난죠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내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미안하다. 잠깐만 참아줘.


 ......어디 보자, 주어진 시간은 세 시간.

 그 안에 주어진 종이에 문제와 그 답을 써야 한다.

 내 23년 인생에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대학입시니, 문제를 풀어본 적은 있어도 문제를 직접 만들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최대한 어렵게 만드는 건 더더욱 말이다.


 남은 시간을 알리는 전자 게시판의 숫자가 1초씩 줄기 시작한다.


 그냥 어렵기만 해선 안 된다.

 내가 풀 수 있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것도 가능이야 하지만, 동시에 문제의 답도 만들어야 한다.

 1시간 반 출제하고 1시간 반 해답을 만든다고 보면 되나?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도 아무 것도 쓰지를 못 한다.


 아니지. 진정하고 생각해보자. 그래, 수학적으로 정리해보자.

 내가 만들 수 있는 모든 문제의 집합을 S, 내가 풀 수 있는 문제의 집합을 A라 하자.

 내가 내야 하는 문제는 둘의 교집합 S∩A의 원소다.

 그리고 이 집합에 난이도로 순서 >를 줬을 때 극대화되는, 다시 말해 maximal한 것을 찾고 싶다.

 다시 말해 max S∩A다.

 ......그렇구나. max S∩A를 구하면 되겠구나.


 교실은 그 안의 많은 사람수가 무색하게, 소름끼치도록 잠잠했다.

 

 빌어먹을!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어렵게 돌려말했을 뿐 하나도 달라진 게 없잖아.

 어쨌든 문제를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문제를.

 어물쩡거리던 사이에 벌써 15분이 지났다.

 3시간에서 15분이면, 음, 12분의 1 지났다.

 12분의 1이면 약 8%.

 그렇군. 8%군.

 젠장! 그래서 어쩌라고!


 이제 완전히 알 것 같다.

 뭐라 할 것도 없다. 망한 꼬라지가 꼭 내 인생같군.

 아니,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도 아니다.

 어쨌거나 일단은 내 주위의 상황을 정리해보자.

 아까부터 들던 이 위화감의 정체를 찾기 위해.


 내 근처에 사람은 없다. 더구나 의자에 묶여있는 것도 아니다.

 계산용지는 충분히 있다.

 물도 마시고 싶을 때 마실 수 있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 내 집중을 돕기 위한 배려다.

 하지만 그것이, 무언가가 마음에 걸린다.

 자유로우면서도 답답한, 자유롭지 않은 듯한 느낌이......


 그런건가. 

 너무 자유로운 거다.

 시험 문제를 푸는 입장이라면 문제를 푸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헤맬 일이 없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도리어 아무것도 못 하는 거다.

 학교에서 문제를 푸는 것 말고 가르쳐주지 않으니 문제를 만들라는 문제에는 걸려 넘어진 거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만든 실수를 알아냈다.


 완벽을 추구해선 안 된다.

 선문답 타르탈리아 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려고 하면 만들 수 없다는 결론만 나온다.

 그야, 어려우니까.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지는 버리고 선택을 좁혀야 한다.

 어려운 문제 만들기는 멈추고, 내가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에서 시작해 상대가 못 풀 법한 문제를 찾아보자.

 이것이 선문답 타르탈리아  최선의 전략이다.


 이제 간신히 깊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잘 하는 분야라면 computer algebra, 즉 그뢰브너 기저 같은 것들이다.

 예컨대,


 "그뢰브너 기저의 정의를 대라."
 "그뢰브너 기저를 계산하라."

 "그뢰브너 기저를 써서 다음 연립방정식을 풀어라."


 이것만으로도 여러 문제를 생각해낼 수 있다.

 그뢰브너 기저는 수학 안에서도 비교적 매니악한 개념이다.

 도라이 켄이 알 가능성은 낮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녀석이 잘 하는 분야는 카테고리 이론일 터이다.

 이게 요네다인가 뭔가 하는 게 나오는 분야인가.


 그렇다면 이 수는 유효하다.

 내가 아는 것 중 그뢰브너 기저를 쓴 문제, 또는 정리를 내는 것.

 여기에 그 해답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이 기술의 파워는 증가한다.


 이후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지혜를, 풀 가동하여 문제 작성에 집중했다.


 "삐삐───!!! 시간 끝났습니다!! 세 시간 경과했습니다!! 혼죠 쨩은 펜을 내려놓으세요!!☆☆ (놓으라구)"

 

 후우.

 다 됐다.

 아슬아슬했지만 어떻게 제한시간 안에 끝냈다.

 아마 이것이 현 시점에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문제이리라.


 "그러면〜 혼죠 쨩은 문제를 공개해 줘〜☆☆ 이거다뿅!☆☆"


 【문제】

 Field K 위의 다항식환 K[x_1, ..., x_n]의 아이디얼 I에 대해, 그 기약 그뢰브너 기저가 유일하게 존재함을 보여라.


 "문제가 공개되었으므로! ☆☆이제부터! 3시간! 도라이 쨩에게 답변 타임 주어지겠습니다! ☆☆→그럼 시작!!"


 뵤도인 호다이가 카운트다운을 개시했다.


 자,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뒷일은 기다릴 뿐이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

 모 농구 만화 캐릭터가 그렇게 말했다. 말한 것이다.


 "......다...어."


 드디어 출제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온갖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일단 내 귀를 의심했다.

 틀림없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1분, 아니 30초?

 꽤 오래 기다려야 할테니 화장실이나 다녀올까도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도라이 켄의 "다 풀었어"란 말을 듣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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