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건널목이 소란스러운 경적을 울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방해한다. 여느 평일, 나는 대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아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비닐 우산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비가 스니커즈를 밑바닥까지 적시고 있었다. 비도 제아무리 많이 와 봐야 강우량은 가산이니까 이 비도 언젠가는 그치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내린대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비는 반드시 그친다는 주장도 경험법칙일 뿐이니, 내린 비가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리고 또 올라가며 순환을 되풀이하면 영원히 그치지 않는 비도 가능하지 않나? 오른손이 피로해져 우산을 왼손으로 바꾸어 쥐면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축을 가득 실은 전차가 눈 앞을 휙 지난다. ..
원문 수학 배틀 관리위원회 위원장 뵤도인 코리(平等院公理) 님께. 수학 배틀(제 00010192호)의 결과를 보고드립니다. 수학 배틀 제 00010192호(이하 본 배틀)는 아래와 같이 이루어졌습니다. 일시 : ○○○○년 ○월 ○일, 13시 56분~15시 7분 장소 : ○○대 제 2식당 (도쿄 도 △△구 △△ □□-□) 형식 : 일대일 배틀 제목 : 돌줍기 게임 참가자 : 혼죠 케이스케, 난죠 코코로 승자 : 난죠 코코로 승자 보상 (난죠 코코로) : 혼죠 케이스케의 수학과 학생연합 회원권 및 도쿄 도 수학과 학생연합 회원권 포기 패자 보상 (혼죠 케이스케) : 난죠 코코로의 웃음 이제부터 본 배틀의 개요를 상세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 『돌줍기 게임』 규칙 : 한 경기가 시..
원문 『Nim sum과 Boolean ring』 "질문. 네 옆에 그 자리는 비어있, 니?" 1학년 미적분학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의 그 때, 나는 드디어 내 인생에도 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게 여자가, 그것도 미소녀가 말을 걸어주다니. 그것도 심지어 내 바로 옆자리에 앉는 거 아닌가. "호, 혹시 이름이 뭐야?" "난죠. 난죠 코코로." "코코로?" "이상?" "아, 아니. 귀, 귀여운 이름이다 싶어서." 나는 파트라슈처럼 완전히 들떠있었다. 여태껏 지키고 싶지도 않은 순결을 지켜왔던 나는 이런 게 빛나는 대학생활이구나 하고 진심으로 생각했더랬다. 5분 뒤 그녀가, 그 미소녀가 남자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혼죠 씨. 동수라는 서클이 있다고 그러던데. 같이 해 보지 않, 을래?" 그 후로 난..
원문 『수락자이매진 러버(數樂者)』 "다음. 혼죠 케이스케, 네 차례. 가즈아." ".................." "불쌍. 네가 어떤 수를 둬도 네 패배는 결정되어 있다. 야레야레." "혼죠 님, 다음 수가 없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면 곤란합니다. 부디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훗." "의문. 뭐가 이상한가. yee." "내 패배가 확정되어 있다고 그러니 말이지." "이해불능. 네 패배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 키랏." "난죠, 테이블을 잘 봐." "웬일. 컵이 늘었다. ......호옹이!?" "뭘 놀라고 그래. 단순한 이야기지. 컵이 두 개만 남으면 진다, 그러면 컵을 늘리면 되는 거지." "혼죠 님! 치운 컵을 무더기로 되돌리는 건 규칙 상 금지된 행위입니다!" "무더기..
원문 『돌줍기 게임』 패배하면 죽음. 난죠 씨는 농담으로도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먼 옛날, "아직 완벽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졸업 시험을 스스로 포기하여 유급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참고로 시험은 기본적으로 만점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난죠 씨는 "코코로 쨩이라고 부르지 마!"라는 말도 하지 않고 초전자포 레 일 건 도 쏘지 않으며 하라쇼─라는 대사와 함께 칭찬해주는 일도 없다. 융통성 없는 괴물. 그게 난죠 씨다. 하지만 설마 진짜 목숨을 빼앗기라도 하겠어. 어떻게든 내가 이기게 해 주겠지 뭐. "그런데 난죠, 무슨 게임을 하려고?" "대기. 방금 전 그들을 호출. 했어양. 금방 도착할 거라 추측. 이라해." 그들이라니? 그 순간 정체불명의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나, 아니 우리..
원문 『난죠 코코로』 "감상. 이 차, 조금 미적지근한 상태. 다냐." 난죠 코코로, 통칭 난죠 씨가 손바닥에 컵을 수평이 되도록 올려놓고 그렇게 중얼댔다. "이야, 이거 정말 오랜만이네! 코코로!!" 내 맞은편 옆에 앉아 있던 군죠가 내 앞에 있는 난죠 씨의 등을 찰싹찰싹 두드리며 말한다. 상당히 세게 때리고 있는 것 같다만 난죠 씨는 반응이 없다. "정말. 너희들과 만난 건 오랜만. 이셩." "에에, 나는 유학가기 전에 봤으니까 1년만이네?" "정답. 군죠 씨와는 1년 47일만, 이징어. 혼죠 씨와는 약 3개월 23일만. 이거들랑." "그렇군. 그렇게 오랜만이었구만!!" 이미 알아차린 사람도 있겠지만 난죠 씨는 말투가 독특하다. 명사로만 말을 끊는 일도 다반사인데다 만화나 애니같은 데서 나오는 캐릭터..
원문 도쿄 도 수학과 학생 연합. 통칭 동수(東数). 수학과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은 적 있는 이름일 것이다. 동수란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해 독자적으로 설립된 수학 단체로, 전국 각지의 도(都), 도(道), 부(府), 현(県)에 존재하는 수학과 학생연합(도쿄 수학과 학생 연합, 홋카이도 수학과 학생 연합 등)의 총 본부에 해당하는 조직이다. 수학과 학생 연합(약칭 수련합)의 목적은 우수한 수학과 학생을 육성하는 것으로, 실제로 창립 100년 전부터 수많은 수학자를 배출해왔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은 "수를 알고 세상을 안다." (수학을 배우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라는 이념으로도 표출되고 있는 수학 지상주의다. 수련합에서는 수학을 못하면 생존권은 없다. 존재하는 것조차 용납받지 못한..
원문 군죠는 Risa/Asir를 켰다. "그래, 거짓말쟁이 문제를 계산해보자고!" 여기는 대학교에 있는 24-Hour Study Room. 24시간 내내 열려 있어 그 어떤 학생이라도 이용이 가능한 자습실이다. 군죠 말고도 적지 않은 학생들이 Summer Break에도 개의치 않고 공부하고 있다. 유학 초기에는 미국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싶어 감탄했지만, 유학 생활이 길어질수록 과제가 너무 많아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그럼 우선 쉬운 문제부터 해볼까." 군죠는 팔을 걷어붙이고 기합을 넣는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는다. *** 문제. 이 중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A. "B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B. "C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 C. "A와 B 중 누군..
원문 "안 되네." Borgwardt 교수의 오피스에서 군죠의 원고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책상 위에는 군죠 나름대로 모아온 발표 원고가 놓여있다. 어제 C.J.와 한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거짓말쟁이 문제를 그뢰브너 기저로 푸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발표하기 전에 조언을 들으려고 수업하는 교수의 오피스에 갔다. "왜 안되는 건가요!?" 군죠는 reject당한 자신의 원고를 보고 득달같이 따진다. 그 원고의 대략적인 내용은, §1. 그뢰브너 기저의 정의 §2. 그뢰브너 기저의 소거법 §3. 소거법의 응용 - 거짓말쟁이 문제의 해법 - 이러하다. "§1이랑 §2는 별 문제 없이 잘 했네." "그런가요." "...문제는 §3이라네." Borgwardt 교수는 스테이플러로 묶은 원고를 슥 넘기더니 군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