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선문답 타르탈리아 (獮問答)』 "머언 옛날 옛적, 16세기 경 이탈리아에 타르탈리아라는 수학자가 살고 있었어요. 타르탈리아는 1535년 초, 안토니아 마리아 피오레라는 사람에게 공개 설전 신청을 받았어요." "고옹개 설저언? (가성)" "대략 설명하자면, 공개 설전이란 서로의 명예와 부를 걸고 상대방에게 수학 문제를 내며 누가 더 수학을 잘하나 겨루는 대결이에요. 수학 시합이라고도 해요. 타르탈리아와 피오레가 치뤘던 수학 설전은, 삼차방정식 문제를 서로 30개씩 주고 30일 뒤에 더 많이 푼 사람이 이기는 형식이었답니다." "삼십문제?? 삼십일이나!!?? (가성)"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독자적으로 발견해 알고 있던 타르탈리아는 피오레의 문제를 보기 좋게 모두 풀어 제출했어요. 한편 피오레는 먼저 ..
원문 개구리무늬 위장색을 한 지프차가 산길을 거침없이 오른다. 그 안에 어색한 솜씨로 핸들을 쥐고 있는 내가 있었다. 운전 그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포장도 안 된 길이 계속 나올 줄은 몰랐다. 역시 공기 좋고 산 좋다는 군마라서 이러는 건가. 아래에서 덜컹거리는 진동이 룸 미러의 키 홀더를 시종 흔들어댄다. "야, 똑바로 좀 운전해라." 운전수인 내게 그런 극진한 조언을 해 주신 분은 이 차를 제공해주신 군죠님이시다. 면허는 있지만 차는 없는 나를 위해 굳이 승용차 한 대를 빌려주셨다. "에휴. 간신히 우리집 차 한 대 빌려줬더니만 드라이버가 이런 꼴이라니." 군죠가 조수석에서 불평을 해댄다. 쓸데없는 참견이다. 뭐 이런 거추장스러운 차를 가져왔어. 기왕이면 다이하츠 탄토로 줄 것이지. "동의. 이렇게 덜..
원문 ".......이거 4색이 아니라 일반적인 n색에 대해서도 되나?" 나는 Case 2를 골랐다. 바로 n으로 일반화하려는 것이 수학도의 본능이다. "물론. n색으로 지도를 구분할 수 있는지 여부도 그뢰브너 기저로 판정할 수 있어." "오오─." "그럼. 식을 세워보자." 난죠는 그렇게 말하더니 펜과 레포트 용지를 꺼낸다. 그러고서 레포트 용지 중앙에 긴 세로선을 그어 종이를 반으로 나눈다. "우선. 4색문제를 다룰 때 세운 식은 x^4-1이었지." x^4-1=0 "여기서. x는 1,-1,i,-i 네 값 중 하나였, 어. 물론 복소수 체 위에서." "그래서 각 값에 색 네 개를 다 대응시킬 수 있었지." "정답. 그러면 n색인 경우에는 어떤 다항식을 줘야 n개의 색을 대응시킬 수 있을, 까?" "으음..
원문 ".......하지만 여기에 무슨 장점이 있는 거지?" 나는 Case 1을 골랐다. 일부러 F_5를 생각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둔감. 예를 들어 계수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 "커진다고?" "정답. 일반적으로 복소수 체 위의 그뢰브너 기저는 3이나 7같은 작은 정수뿐 아니라 234/337, 323423/13947처럼 복잡하게 생긴 유리수도 계수로 나올 가능성이 있어." "그 말대로네." "한편. F_5에서는 {0,1,2,3,4}만 가지고 계산하니까 절대 자릿수가 늘어나지 않지." "아, 그렇군!" "다만. 이 사실이 효율적인 계산으로 이어지는 지는 실험해보지 않고선 알 수 없어." 난죠가 그렇게 말하더니 물에 든 얼음을 입 안에 삼킨다. "그럼. F_5 위..
원문 오늘의 라떼 아트 〈그뢰브너 기저〉 타임라인을 쭉 내리다가 그런 동영상을 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음을 찍고 리트윗을 한다. 그리고 내 팔로워 수가 또 하나 줄어드는 걸 확인한다. 손가락도 쉴 틈 없이 팔로잉 리스트를 눌러 "귀여운 고양이짤 저장소" 계정에 들어가 계정주가 엄선한 고양이 짤을 처음부터 끝까지 RT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완료. 생각 완료했어." 눈 앞에 있는 난죠가 콘 스프를 먹던 스푼을 내려놓는다. 밤 시간의 패밀리 레스토랑. 내가 모르는 아이돌의 최신 싱글 앨범곡이 가게 안에 흐른다. "추정. 도라이 켄은 선전포고를 한 거 같아." 난죠가 물이 든 컵을 손바닥에 수평이 되게 올리면서 말했다. 평소라면 흘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 하겠지만, ..
원문 『그뢰브너 기저와 4색문제』 "너희 뭐 하는 거야!" 가위를 휘두르려는 순간 큰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만 가위를 등 뒤로 숨겼다. 운 좋게도 타지마 녀석들은 가위를 못 본 것 같다. "칫, 간다!" 타지마는 그렇게 말하곤 쫄따구들과 함께 나에게서 떨어진다. 편의점 주차장에 홀로 남겨진 나. 그런 내게 여고생 한 명이 다가왔다. "괜찮아?" 그 녀석이 연분홍빛 우산을 아래로 내리고 쭈그려 앉으며 내게 물어 왔다. 나는 눈이라도 맞을까 아래에 떨어진 비닐봉투를 봤다. "볼." "??" "볼, 더러워졌어." 그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선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녀석의 따뜻한 손에 볼이 간질간질해졌다. 카페라떼 색 교복, 머리엔 빨간 리본. 가슴에는 파란 나비넥타이를 달고 있었다. 녀석이 내..
원문 『그뢰브너 기저로 지도를 칠하다』 어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편의점 주차장에 앉아 탄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오전에 비가 와서 콘크리트 위에 물이 조금씩 고여 있었지만, 다행히도 연석까지 젖지는 않았다. "흐하하하하하하!!!" 멀찍이서 녀석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더럽고 저질스런 목소리에 뺨에 붙은 반창고가 살짝 저려온다. 나는 즉시 책가방에서 가위를 꺼내 뒷주머니에 넣었다. "어? 너 K 맞지! 또 뭐 사먹고 있냐?" 녀석 중 하나가 내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말을 건다. 녀석들이 나를 부를 때 쓰던 K는 녀석들이 붙인 별명인데, 내 이름의 이니셜과 "퀴퀴하다"의 K를 엮은 것이다. "어? 어? 어? 어디서 또 퀴퀴한 거 사다 쳐먹고 있네? ..
원문 『지도와 다항식』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목이 너무 말랐다. 나는 편의점 주차장에서 탄산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도시 속 시골 같은 이 마을은 가는 곳마다 편의점이 있었다. 평일 오후 4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차 안에서 자고 있는 직장인이나 편의점에서 잡지 따위를 펴서 보는 아저씨 등 사람이 하나둘 보인다. 그들은 그 곳에 존재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따라서 책가방을 맨 초등학생이 편의점 앞에서 당당히 뭘 먹고 있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즘 시대에 얼굴도 모르는 초딩에게까지 말을 거는 녀석이 있다면 수상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이 세상은 쓰레기 같지만 탄산음료만은 언제나 상쾌하다. 이 세상에서 탄산음료만이 나를 위로해 준다. 나는 어쩐지 여동생이 떠올라 ..
원문 『나라를 칠하다』 화가 난다. 내 방에 들어서니 여동생이 방바닥에 공을 갖고 놀고 있었다. 여동생 주위엔 쥐 인형과 밟으면 소리가 나는 장난감 따위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여동생이 올해 겨우 5살이라고는 해도 너무 화가 난다. 생각해보면 떡잎마을 신 모 씨 집안에서 항상 폭풍우를 일으키는 그 유치원생도 5살이니까 그런 나이의 애들이란 의외로 모두 그런 건지 모르겠다. 나는 여동생에게 다가가 가지고 놀던 공을 뺏었다. 그러자 여동생은 같이 놀아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본다. 그 웃는 모습에 왠지 나는 열이 올라서, "뭐." 라고 물으며 공을 집어던지는 척을 했다. 하지만 덕분에 발톱에 반대편 발을 긁히고 말았다. "아으......!!" 나는 고통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